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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370)-海帝어둔] 10. 왕과 해제의 만남 <9>

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2014-12-21     이재명 기자
장희빈은 당시 조선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경제에 밝은 여자였다. 그녀의 미색뿐만 아니라 경제적 통찰력을 숙종은 높이 샀던 것이다.

그녀는 궁녀로서는 조금 늦은 22세 때 조선에서 가장 큰 칠패시장에서 인삼과 소금 무역상을 하다 후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후견인인 당숙 장현으로부터 방중술뿐만 아니라 경제와 무역을 배웠다. 당숙 장현은 역관 출신으로 거만의 부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야심이 큰 자였다. 그는 중국 연행사와 일본 통신사를 수행하면서 거만의 돈을 벌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던 장현은 역관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사행단에는 몇 달 걸리는 외국여행경비를 국가에서 지급하지 않고 인삼을 무역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역관들은 일정한 양의 인삼을 가져가 금이나 그곳 특산물로 바꾸어온다. 역관 한사람에게 허용된 무역량은 인삼 10근씩 담은 8개의 꾸러미인 팔포(八包)였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활인 인삼 팔포면 당시 쌀 2천석 정도를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장현은 중국에 가서 인삼을 주고 비단, 생사, 문방구, 가죽 등을 구입해 일부는 조선에 팔고, 대부분 일본과 무역창구였던 왜관에 팔아넘겼다. 당시 청나라는 일본과 모든 교류를 단절했기 때문에 장현을 비롯한 역관들은 이렇게 중계무역을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에 가서는 인삼을 주고 은과 구리를 구입했다. 은은 은본위제인 중국으로 전량 수출되었고, 구리는 상평통보를 주조했던 조선에서 소비하면서 또다시 엄청난 중계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장희빈은 당대 최고의 부자인 당숙인 장현의 보살핌을 받아서 경제적으로 궁핍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굳이 궁녀의 길을 택한 이유는 장현의 계략과 그녀의 야심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장현은 자신의 딸도 효종 때 궁녀로 보내 정치적으로 남인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남인의 실세였던 허적과 교분이 있었고, 그게 문제가 되어서 집안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정경유착을 통해 세력과 부를 얻었다. 장희빈도 장현이 돈과 세력을 얻기 위해 궁중에 심어둔 끈이었다.

하지만 장희빈은 그 끈의 역할을 기대이상으로 잘했다. 그녀는 타고난 미색과 경제적 통찰력으로 숙종을 움직여 대동법을 시행하고 상평통보를 유통시켜 세종 이래 굶주린 백성을 이팝에 소고기 무국을 먹이는데 성공한 왕이 되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그녀의 미색과 지혜도 왕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왕이 그녀를 걸터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첫날밤 그대와 나누던 말이 생각나구려.”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첫날밤 숙종은 그녀의 옥문을 경험한 뒤 곧바로 처녀성을 의심했다. 왕은 차마 말로 못하고 지필묵을 꺼내어 글로 썼던 것이다.

‘毛深內闊必過他人(털이 깊고 안이 넓어 허전하니 필시 타인이 지나간 자취로다)’

그러자 장희빈이 배시시 웃으면서 붓을 들어 대구를 적었다.

‘後園黃栗不蜂坼 溪邊楊柳不雨長(뒷동산의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무성하게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