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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372)-海帝어둔] 10. 왕과 해제의 만남 <11>

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2014-12-23     이재명 기자
숙종이 근정전 앞 육조마당에 국청을 열었다. 죄인 박어둔과 안용복이 포박을 당한 채 묶여 있고, 좌우로 재상들이 시립하고 일본에서 온 공차(公差) 다치바나 마사시게(橘眞重)가 죄인들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숙종이 마당에 세워진 보좌에 앉자 장희빈의 척족인 영의정 민암이 말했다.

“대역죄인 박어둔과 안용복은 고개를 들라. 영중추부사는 이놈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라.”

영중추부사가 죄상을 말했다.

“박어둔과 안용복 두 죄인은 방금령을 어기고 일본으로 무단 도해하여 울릉도 태수와 감세관으로 사칭하는 등 우리나라의 외교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게다가 박어둔의 경우, 불충 죄인 서인 송시열의 우암학당 문하생이었으나 삼복지변에 가담하여 대역의 죄를 짓고 해외로 도망친 자로 그 죄가 더욱 중하니 능지처사가 마땅한 대역죄인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왕비를 거느렸던 숙종은 지금 궁중 여인의 일로 머리가 복잡해 울릉도와 방금령,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인 삼복지변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쨌든 나이 들어 요물이 된 장희빈을 내치고 사랑스런 숙빈 최씨를 중전으로 들일 일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숙종의 성격은 우유부단보다 단호함이 특징이다. 그는 호불호가 분명해 좋아하면 불꽃처럼 타오르다가도 식어지면 냉정하게 물리쳤다.

인현왕후도 그러했지만 후일 왕비로 간택된 인원왕후도 마찬가지로 찬밥신세였다. 한번 신임을 잃으면 가차 없이 내쳤다. 간택 후궁으로 들어온 영빈김씨도 숙종과 눈을 맞출 기회도 없었을 만큼 홀대를 받았다. 인원왕후와 영빈김씨, 이 둘은 임신도 한 번 못해봤다. 이런 숙종의 여자에 대한 성향은 아들 영조와 증손자 정조에게도 고스란히 물려져 내렸던 것 같다. 영조도 아내인 정성왕후와는 왕위에 오른 후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고 정조도 왕비인 효의왕후 침전에 들르지 않았다.

숙종이 훗날 장희빈을 내치고 인현왕후를 궁궐로 불러들였지만 인현에게 가졌던 마음은 동정과 연민이었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정략적 대상이었을 뿐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숙종은 별 생각 없이 박어둔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흠, 그대는 송시열의 문하로 대과에서 장원을 한 자가 아니었던가.”

“처음 장원으로 선정되었으나 말석으로 붙었을 따름입니다.”

글제는 당시 송시열의 대공설을 논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글은 송시열의 대공설을 옹호하는 최고의 논변으로 대과 장원의 낙점을 받았으나 송시열의 낙마와 함께 역적으로까지 몰렸다가 가까스로 말석인 33번째로 합격했다. 대공설을 비판한 김석주는 장원을 하고 한양의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박어둔은 외방인 강원도 울진현의 현감에 제수되었다.

하지만 숙종은 그때 대과의 장원을 두고 논란의 중심에 선 박어둔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이 숙종은 최근 장희빈의 간청에 의해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숙종은 방금 교접이 끝난 장희빈의 체취를 떨어버리는 듯 용포 소매를 떨치며 말했다.

“그래, 너는 과거 역적 송시열을 옹호하는 글로 논란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무슨 연유로 울릉도 태수로 사칭하면서 일본으로 무단도해를 해 또 다시 외교 분쟁의 중심에 섰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