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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373)-海帝어둔] 10. 왕과 해제의 만남 <12>

글 김하기 그림 박상호

2014-12-24     이재명 기자
박어둔이 숙종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울릉도와 자산도(독도)는 원래 아방의 강토였습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후 이 두 섬에 왜인들의 배가 드나들면서 어렵을 하고 우리 주민을 내쫓고 여막과 마을을 만들어 점거했습니다. 이에 저와 울산의 어부 등 40여 명은 울릉도에 들어가 왜인과 왜선들을 내쫓고 울릉도를 우리 강토로 회복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왜선은 끊임없이 두 섬으로 쳐들어와 발본색원하기 위해 일본 에도로 들어가 막부 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만나 다시는 울릉도와 자산도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도해금지령을 받아내었습니다. 이것은 애국이지 불충이나 역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어둔의 말이 끝나자 일본의 공차 다치바나 마사시게가 서툰 조선어로 반박했다.

“박어둔과 안용복 이 두 자는 죽도와 송도 태수와 감세관을 사칭하며 돈을 뜯어내다 호키주 어선들에 의해 일본으로 나치(拿致, 붙잡혀 송치됨)된 자들입니다. 이에 에도의 장군께서는 서신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죽도에 조선의 배가 고기 잡는 것을 금하기를 청하였습니다.”

공차 다치바나는 에도 막부의 장군으로부터 직접 받은 서신이라며 읽기 시작했다.

“조선의 대왕 귀하

귀역의 바닷가에 고기 잡는 백성들이 해마다 본국의 죽도에 배를 타고 왔으므로, 토관(土官)이 국금을 상세히 알려 주고서 다시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굳이 알렸는데도, 올봄에 박어둔을 비롯한 어민 40여 명이 죽도에 들어와서 난잡하게 고기를 잡으므로, 토관이 박어둔 안용복 2인을 잡아두고서 한때의 증질(證質, 대질심문의 증인)로 삼으려고 했는데, 본국에서 번주목이 동도(東都, 에도)에 빨리 사실을 알림으로 인하여, 어민을 대마도에 맡겨서 고향에 돌려보내도록 했으니, 지금부터는 저 죽도와 송도 두 섬에 결단코 배를 용납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 금제(禁制)를 보존하여 두 나라의 교의(交誼)로 하여금 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에도 막부 도쿠가와 쓰나요시 장군”

일본 공차의 말이 끝나자 영의정 민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감마마, 폐방(弊邦, 조선)에서 이미 어민을 금지 단속하여 외양(外洋)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고, 비록 우리나라의 울릉도일지라도 또한 아득히 멀리 있는 이유로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게 했는데, 하물며 그 밖의 섬이겠습니까? 국경을 넘어 깊이 들어가서 난잡하게 고기를 잡는 것은 국법으로서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범인들을 형률에 의거하여 죄를 과하고, 이후에는 조선의 해척들이 울릉도와 일본에 도해하지 못하게 하고 연해 등지에 과조(科條)를 엄하게 제정하여 이를 신칙하도록 해야 할 것이오.”

장희빈의 당숙인 민씨 일족은 이미 공차 다치바나와 서울왜관의 감호관 다이라로부터 거만의 뇌물을 받아 박어둔과 안용복을 처형하는 데 동의했다.

그때 좌의정 남구만이 나서며 영의정 민암의 말에 반론을 폈다.

“상감마마, 신이 생각하건대 울릉도는 조종의 강토입니다. 신라 때부터 토공(土貢)을 바쳤으며, 고려 태조 때에 섬사람이 방물을 바쳤습니다. 우리 태종 때에 왜적이 침입하는 근심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안무사를 보내어 유민을 찾아 내오게 하고는, 그 땅을 텅 비워 두게 했으나, 지금 왜인들로 하여금 거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조종의 강토를 어떻게 남에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 조종의 강토를 지킨 두 사람에게 상을 줘야지 왜 벌을 내리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