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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봉의 냄새이야기(26)]향의 고향 그라스

2015-04-14     경상일보
▲ 양성봉 울산대 화학과 교수

그라스(Grasse)는 프랑스 남부 해안에 있는 칸(Cannes)이라는 해양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북으로 가면 25분 만에 도착하는, 울산 언양읍 정도의 작은 도시라 한다. 인구는 4만9100명에 지나지 않지만, 프랑스 향수와 향료의 3분의2를 생산하며, 전 세계 향 산업 수익 중 10%가 여기서 발생된다고 한다. 과연 작아도 강력하며, 향 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다.

그라스는 원래 18세기까지 피혁공장이 많았던 곳으로 피혁에서 발생되는 악취를 줄이기 위해 식물정유(essential oil)가 이용되고 있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이 악취제거 산업은 향수산업으로 점차 변천하여 지금은 세계적인 향수도시로 바뀐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는 향수의 원료인 장미·재스민 등 꽃과 오렌지 재배가 많았으며, 비누·올리브유 등의 제조도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향수의 원료가 되는 향료의 산지는 북아프리카, 중동, 동유럽, 중국 등으로 변했지만, 향료의 조제기술은 그라스가 세계 1위를 자랑한다. 그라스에서도 향수의 비밀스러운 제조법을 전수토록 조향사를 키우고 있지만, 그 수는 그라스의 60여개 향수공장에서 연간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라스, 그라세 등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조그만 한 이 도시의 이름은 세계 곳곳에서 향을 상징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향, 꽃, 휴양을 상징하는 단어로 그라스를 사용하고 있다. 그라스가 있는 곳은 프로방스(Provence)라는 프랑스의 한 지방에 속해 있어서, 마르세이유 등과 함께 전형적인 지중해 연안지역으로 기후가 좋아 관광 휴양지로 이름나 있다.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가죽산업은 곳곳에 있었지만, 최근에는 가죽가공에서 발생되는 혐오스러운 악취로 인해 퇴출되고 있어서, 전국적으로도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가죽산업도 프랑스의 그라스처럼 첨단산업의 원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혐오스럽고 악취가 심하다는 이유만으로 퇴출시키기보다 전통산업을 보호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악취를 좋은 냄새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마련한다면, 한국의 그라스도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양성봉 울산대 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