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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중의 한시산책(17)]한시와 지족(知足)

2015-05-19     경상일보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우리 속담에 아흔아홉 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의 것을 마저 빼앗으려 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화의 소유 정도를 가지고 그 사람의 사회적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하지만 옛 사람들은 물욕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곤 하였다. 특히 출가한 승려가 그런 생각을 더 자주 드러내었으니,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간 법정(法頂) 스님도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무소유는 한편으로 만족을 아는 삶, 곧 지족의 정신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뜬구름 같은 부귀가 나를 어찌하겠는가?

분수 따라 사는 삶이 또 절로 아름답네.

단지 근심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찌 술이 필요하랴?

안심입명(安心立命)할 곳을 얻어 문득 집을 삼네.

浮雲富貴奈吾何 隨分生涯亦自佳

但不愁來何必酒 得安心處便爲家

*안심입명(安心立命): 불교에서 모든 의혹과 번뇌를 버려 마음이 안정되고,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는 일.



이 시는 고려시대 승려 혜심(慧諶, 1178~1234)의 <지족의 즐거움(知足樂)>으로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에 실려 있다.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며 분수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아름답게 여기는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 근심만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찌 술 같은 게 필요하겠는가? 안심입명할 곳을 얻어 집을 삼겠다는 마음가짐이 드러나고 있다. 이 시는 속세에서 벗어난 청정 도량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생각은 유학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족을 알면 가난해도 오히려 즐겁고, 탐욕이 많으면 부유하더라도 또 근심스럽네. 즐거움과 근심을 모두 내가 취하는데, 어찌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하랴?(知足貧猶樂 貪多富亦憂 樂憂皆我取 天人何怨尤)”라고 읊은 허진우(許鎭宇, 1861~1919)의 <지족의 노래(知足吟)>도 같은 생각을 담고 있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