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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중의 한시산책(19)]한시와 막걸리

2015-07-21     경상일보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올해는 마른장마 탓으로 중부지방에서는 수십 년 만의 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다가 지나가는 태풍 찬홈의 떡고물처럼 쏟아진 강우 덕분에 조금 숨통이 트인 형국이다. 장마철에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빈대떡이나 파전을 안주 삼아 소주나 막걸리 몇 잔을 기울이며 마음 맞는 사람과 환담을 나누는 것이 제격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막걸리(濁醪, 濁酒)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막걸리에 포함된 유산균의 숫자가 요구르트보다 수백 배 많다든가, 막걸리에 포함된 스쿠알렌의 함량이 포도주의 120배라는 등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전통술 막걸리의 효능이 재평가되는 것 같아 애주가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한 생각이 든다. 마침 지금 전주에 소재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지난 5월22일부터 8월30일까지 ‘술, 이야기로 빚다’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는 만큼 전통주의 다양한 면모를 살피는 좋은 기회로 삼을 만하다.

우리 선조들은 술의 어떤 효능을 좋게 평가하였을까? 우선 술을 매개로 한 친교 기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독작(獨酌)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술의 가장 큰 효능은 취흥(醉興)과 망우(忘憂)가 아닌가 싶다.

한낮 되니 들판 언덕에 안개와 이슬 걷혔는데
벗과 함께 천천히 거닐며 한가로이 노니네.
산촌 막걸리를 다 기울이고 나니 호기가 일어나서
나의 삶이 이미 백발인 줄도 모르네.

當午郊原霧露收 携朋緩步辦淸遊
山醪倒盡豪情發 不覺吾生已白頭

이 시는 조선후기 문신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봄날 안국화와 시냇가에서 노닐다(春日與安國華遊溪上)>라는 작품이다. 도도한 흥취에 백발노인인 사실도 잊고 청춘인 양 호기를 부리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자칫 <어부사(漁父辭)>에서처럼 술이 없으면 지게미라도 마시고 거짓 취태를 부려야 하는 세상이 될까 싶어 두려운 마음이 든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