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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중의 한시산책(23)]한시와 와유(臥遊)

2015-11-17     경상일보
▲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

가을이 끝을 보이고 있다. 남쪽지방에도 단풍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겨울이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한다. 겨울에도 산행하는 묘미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혹한기에는 산천 유람을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산천 관광의 유혹을 멈출 수 없으니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이 바로 누워서 노닒을 뜻하는 와유(臥遊)이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와유첩발>(臥遊帖跋)에서 ‘호사가들이 온 천하를 다 유람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을 보고, 또 그러한 힘을 갖추지 못함을 근심한 나머지 그림으로 명산을 그려 눈앞에 펼치고 이를 통해 천하의 산수를 감상하는 취미를 붙이고는 이를 와유라고 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형편에 맞는 편리한 방도를 취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와유는 그림이나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명승인 만큼 대상의 핍진성과 현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경승을 즐긴다는 점에서 보면 오늘날의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것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해가 부상(扶桑,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데
배는 푸른 바다 속으로 들어가네.
아득히 끝이 없으니
바라볼 수는 있지만 끝까지 다 보이지는 않네.

日出扶桑上 舟入滄海中 일출부상상 주입창해중
浩浩無涯涘 可望不可窮 호호무애사 가망불가궁

이 시는 조선후기 문신 이이순(李頣淳, 1754~1832)이 태묘(太廟)에 비치된 관동팔경(關東八景)을 그린 병풍을 보고 각 경치별로 승경을 와유하며 쓴 작품 중에서 울진의 망양정(望洋亭)을 읊은 부분이다. 동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기 좋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정자와 바다 위로 떠가는 배 그림에서 오는 상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한양에 있으면서도 동해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으니 와유는 시공을 초월한 감상법이었다. 이런 방법으로 교통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의 사람들도 산수 절경을 그린 그림이나 시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그 경승을 감상하였던 것이다.

성범중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