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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경의 유물이야기(47)]아무나 쓸 수 없었던 우산이야기

2016-05-03     경상일보
▲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

‘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 메고…’ 조선 전기 학자 김굉필의 시조 중 한 구절이다. 비오는 날의 잔잔한 여유와 소박한 일상이 오롯이 담겼다. 지금의 우리들은 비오는 날 우산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조선 시대는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걸치며 양반들은 갓 위에 갈모나 쓰개치마를 썼단다.

우산을 처음 만든 것은 중국이나 고대 이집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우산이라 하여 4세기 대에 중국에서 대나무를 쪼개 우산살을 만들고 기름을 묻힌 뽕나무를 붙인 것이 오늘날의 우산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시작이다.

5세기대의 고구려 고분벽화인 장천1호분이나 덕흥리고분에도 대가 긴 일산(日傘)을 들고 주인을 가려주는 시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산은 의식을 행할 때나 주인이 행차할 때 볕을 가리는 큰 양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부여 능산리유적에서 목제로 된 일산의 부속구가 출토됐다.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에서 발견돼 백제의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했던 일산의 부속구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일산(우산)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기에 주목을 끌었다.

▲ 신윤복의 <노중상봉>, 『혜원전신첩』간송미술관, 국보 135호

고려 시대에도 양산과 우산을 겸한 장량항우산(張良項羽傘)이라는 것이 있어 지위가 높은 이들이 외출 시에 사용했다고 한다. 우산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80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의 문물이 전해지면서부터이고 우산을 쓰고 나가 폭행을 당했다는 기록이 독립신문에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도 특정 집단이 누리는 전유물로 인식됐던 모양이다.

비가 오면 너도나도 당연한 듯 들고 나서는 물건이자 패션이 되어버린 우산이 원래 시작은 권력의 상징이자 상류층 문화였음을 알게 되니 세상의 변화가 새삼 새롭다.

배은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