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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찬의 건강지평(46)]봄나물 예찬

2020-03-19     경상일보
▲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언덕은 어느새 파릇한 윤기로 반짝인다. 몽글진 두릅 새순이 고개를 내밀었고 햇살 소복한 앞마당 엄나무 가지에도 물기가 돈다. 이맘 때가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봄나물의 맛과 향을 기억해낸다. 먹을 수 있는 나무의 잎과 풀이 나물(菜)인데, 음식의 맛과 향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는 이유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함유된 음식에 우리를 끌리게 하기 위해서다. 봄나물을 기억하고 그 쌉싸래한 맛과 향에 끌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2005년에 발표된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와 ‘듀크대 메디칼 센터 독일 인간 영양연구소’의 공동 연구에서는 인간이 쓴맛을 느낄 수 있도록 진화한 이유가 식물에 함유된 독성을 인식함으로써 그런 식물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논문은 흥미롭게도 그것이 오늘날에는 그다지 이롭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쓴맛이 느껴지는 화합물이라고 다 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항암 성분이 있는 브로콜리 내 일부 화합물도 쓴맛이 나는 알카로이드이다. 쓴맛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경우 독성을 피하는 대신 몸에 좋은 음식을 멀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빌 브라이슨 <바디: 우리 몸 안내서> 까치글방 2020)

결핍이 차면 절실해진다. 내면의 유전자는 결핍을 욕구로 전환시킨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들의 냄새는 향기롭고 맛은 달다. 우리가 음식을 달게 먹었다는 것은 그 맛이 달아서(sweet)가 아니라, 우리 몸이 필요한 것을 먹었을 때 느끼는 흡족한 감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뼈에 사무치는 추위가 매화의 향기를 만들어 내듯 봄나물의 향기 또한 마찬가지다. 향이 강할수록 쓴 맛은 강해지는데, 그럼에도 이들의 맛과 향에 끌리는 것은 이들이 지닌 화학적 성분을 우리 몸이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배된 것일 지라도 봄나물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가득한 고난과 야생의 빈곤 속에서도 푸르게 빛나는 풀과 잎이 봄나물인데, 이것들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몸 안의 봄이 시작된다. 봄나물의 맛과 향이 내면의 곤(困)함을 깨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했다. 약과 음식의 근원이 같다면 제철 야생의 봄나물이야 말도 우리 몸이 절실히 원하는 약이 아닐까.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