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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33)]전문가시대의 도래(到來)

2020-03-26     경상일보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의사보다 과학자보다 전문가연하며
귀동냥 지식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정작 전문가들의 말문을 닫게할 뿐
과학기술 발달로 도래한 지구촌시대
사회의 근본이 바뀌는 혁명적 변화에
1980년대식 정치개념은 유효하지 않아
얼치기 전문가는 입을 닫아야하고
진짜 전문가는 적극적으로 입 열어
국가의 중대사안에 해법을 제시하면
위정자는 적극 수렴해서 정치해야



# 언젠가 사회통계자료를 기반으로 하여 각종사회문제를 진단하는 것을 주 전공으로 하는 사회학과 교수 A와 다른 전공교수 B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날 대화의 주제는 건강과 수명(壽命) 관련 문제였다. 그즈음 언론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한국 사람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었다. 나는 ‘현재 한국인 평균수명이 80세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죽는 사람의 평균나이가 80세란 뜻이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있다가 죽을 것이니, 80세보다는 더 살 가능성이 높겠군.’하고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A는 ‘그게 아니고, 현재 평균수명이 80세라는 건, 지금 이 순간 태어나는 아기들이 앞으로 살다가 죽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나이가 80세란 뜻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B가 그 말을 듣더니 ‘아니야, 윤 교수 말이 맞아. 지금 태어나는 아기들의 평균수명은 90세도 넘을 걸’이라고 자신 있는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A는 다시 ‘그거 내 전공입니다.’ 이쯤 되면 A말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B는 줄기차게 A에게 ‘잘못알고 있는 거야. 다시 확인해봐!’ 하니, A는 더 이상 얘기해봤자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 언젠가 친구들 몇 명과 야구얘기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 야구공에 실밥이 밖으로 꿰매져 있는 사실에 대해 친구 한명이 ‘투수나 야수들이 공을 던질 때 너무 매끈하면 손으로 잡기에 미끄러우니까 손가락에 걸리도록 일부러 그렇게 꿰맨거야’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공의 겉면이 거칠어야 공기저항이 적어져서 강속구를 던질 수 있거든. 공을 쳐도 멀리가고. 축구공도 테니스공도 골프공도 모두 거친 표면으로 만드는 이유가 그거야.’ 그랬더니 그는 다시 ‘공이 거칠면 저항이 커지지 어떻게 저항이 작아지냐? 표면이 거칠면 저항이 작아진다니 그러면 자동차표면은 왜 매끈하게 만드냐?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상식.’ 너무 확신에 찬 강한 말투에 유체역학전공인 나는 ‘내 전공분야인데’하고 읊조리고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언젠가 와인(wine) 전문가를 자처하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 각자 와인에 대한 지식을 경쟁적으로 자랑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산지인 캘리포니아 나파벨리(Napa Valley) 근처에 1년간 있으면서, 포도재배부터 와인제조과정, 와인테이스팅 등을 전부 경험했고, 와인관련 책도 많이 읽었으며, 와인특강도 여러 차례 했노라고 눈을 번득이며 뻐겼다. 때마침 와인 병이 내 옆에 놓여있기에 자연스레 내가 뚜껑을 따야했다. 힘차게 스크류를 돌려 코르크마개를 단칼에 뺐는데 글쎄 스크류가 마개밑창을 뚫고나온 거 아니겠는가? 이구동성으로 ‘아니 마개를 그리 따면 코르크가루가 와인에 떨어지지 않냐’고 하여, 나는 졸지에 얼치기 전문가로 전락하고 만 일이 있다. 창피 당할까봐 그후 와인 얘기는 더 이상 안한다.

이런 비슷한 일이 주위에 너무나 많이 벌어진다. 병원에 오는 환자의 상당수가 의사보다 전문가요, 변호사사무실에 오는 의뢰인 중 다수가 자칭 법전문가란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귀동냥 지식으로 무장하고 목소리만 큰 그들 앞에서 전문가들은 말해봤자 듣지 않으므로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일이 다반사(茶飯事)란다.

미국이 빈라덴 체포 작전을 할 때 미군 수뇌부가 벙커에서 회의하는 장면이 우리나라 언론에 비쳐진 적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켠에서 작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전문가가 중심에 서서 전쟁의 구체적인 작전·전술문제를 논의하고 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의깊게 듣고만 있었는데, 그게 몹시 감동적이었다. 그렇다. 얼치기전문가는 입을 닫아야 하고 진짜 전문가는 적극적으로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위정자는 그들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

과학기술, 특히 ICT(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젊은이들은 친척이나 고교동문 보다 멀리 브라질의 BTS 팬클럽 회원에게 더욱 친근감을 느끼는 지구촌시대다. 세계적으로 핫(hot)한 작가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말처럼, BT(생명기술), ICT를 필두로 각종 과학기술이 사회의 근본을 바꾸며,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는 지금, 1980년대식 민족위주·이념위주의 정치개념, 또 모든 것을 정치로만 풀려는 통치행태 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주먹 쥐고 흔들면서 대중선동하고, 음모와 계략으로 상대방 속이면서 권력을 취하는 법을 전공한 패거리 정치꾼들이 다스릴 수 있는 사회가 더 이상 아니다. 그런 사람 1000명 있어도 폐렴바이러스, 컴퓨터바이러스, 집값문제를 풀지 못한다. 전문가시대가 도래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 아니 자신들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필요 없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