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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찬의 건강지평(53)]한여름 산들바람

2020-07-02     경상일보
▲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낮에는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숲을 향해 불어오고, 밤이 되면 숲속의 바람이 바다를 향해 불어간다. 바람에도 길이 있어 바람은 늘 길을 따라 부는데, 꽃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실바람이고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은 산들바람이다.

바람은 불어가고 불어올 때만 인식되는 물리적인 존재다. 계절을 따라 오는 바람은 계절풍으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해풍으로 인식한다. 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마파람이고, 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샛바람이다. 아카시아 꽃향기를 코끝에 전하는 바람은 실바람이고, 잔물을 헤적이는 봄바람은 남실바람이다. 한여름 달빛조차 바람의 길을 따라 일렁인다.

바람은 상호작용의 현상적인 존재다. 세상의 모든 실재가 그러하다. 파도가 바다 속으로 녹아들기 전에 잠시 모습을 유지하듯, 바람도 잠시 머무는 한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바람처럼, 다른 대상들처럼 잠깐 동안만 한결같은 과정인 것이다(카를로 로벨리,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쌤엔파커스 2020). 꽃잎 흔드는 바람에는 가슴이 젖고, 옥수수 잎을 흔드는 바람에는 상쾌함이 느껴진다. 잡목 우거진 숲에서는 바람이 흐느끼고, 잔물을 헤적이는 남실바람은 물결처럼 일렁이는 그리움이다. 잠시 스쳐가는 바람에 감정이 실려 오는 것은 바람이 뇌의 변연계를 관통하여 인간의 감정회로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바람은 늘 바람의 길 위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바람의 길 위에 늘 바람이 이(起)는 것은 바람도 길 위에서 모이고 합쳐지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날아오는 길도 실상은 바람의 길이어서, 여름 철새들은 한여름 산들바람 타고 날아온다. 여름 내내 바람의 길목을 찾아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바람의 길목에는 늘 바람이 일었고, 바람의 길목에서 사람들은 바람처럼 모였다 바람처럼 흩어졌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이다. 실내외의 온도차는 벌어지기 시작했고, 온도차가 커질수록 냉방병은 늘어난다. 냉방병 예방을 위해서는 실내외의 온도차가 5℃ 이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자주 자연풍을 마주해야 한다. 한여름 산들바람에 행복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엄연한 생명현상이다. 한여름 산들바람의 행복한 경험이 잊혀 지면 여름 냉방병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