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김문찬의 건강지평(57)]심리적 나이

2020-09-03     경상일보
▲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하늘은 높아졌고 바람은 맑아졌다. 뜨거운 햇살을 숙명처럼 견뎌내던 푸른 잎들의 굳센 잎맥 위에도 어느덧 황혼빛이 어린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자연은 변함없이 생명의 리듬을 완성해 가겠지만, 파리하게 늙어가는 풀들이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따라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인다.

‘사람들은 흔히 심리적 연령과 생리적 연령을 말하고, 심리적 연령의 개인차를 말한다. 그러나 자기의 심리적 연령이 생리적 연령보다 젊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다 가슴속에는 영원한 청춘을 갖고 언제까지나 젊다는 착각 또는 환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이양하 ‘늙어가는 데 대하여’).

30대가 되어서는 아저씨라는 호칭에 실망했고 50대 후반에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놀랐다. 나이가 들수록 나이를 잊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실제 나이와 심리적 나이의 차이가 너무 심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이제야 조금 알겠다. 나이 값을 못하기 쉽고 외양조차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몸은 따라가지 않는데 욕심만 앞서니 몸의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도전이 지나쳐 집착을 불러오기도 한다. 지나친 도전은 마음의 자유마저 제한한다. 자칫 황혼녘의 평화와 여유를 대가로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리적 나이가 젊다하여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빨갛게 고추가 익어가고, 숨 가쁘게 한낮의 햇볕을 불러 모으던 호박잎에도 어느덧 주름이 진다. 내면이 외양을 결정한다면, 가을을 향해가는 식물들의 외양은 모두 성숙된 내면의 결과일 것이다. 맹렬하게 담장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덩굴도 동작을 멈추었다. 은행잎은 색조를 바꾸기 시작했고, 한여름의 무성함을 완성했던 나뭇잎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지나간다. 저녁노을이 바람을 타고 퍼져간다. 들녘은 가을의 예감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한 무리의 새들이 또렷이 맑은 하늘위로 날아오른다. 노을 진 들녘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봄은 아쉬웠고 여름은 뜨거웠다. 동작을 멈춘 담쟁이덩굴도 지나온 세월을 더듬으며 삶의 리듬을 완성해 갈 것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듯 노을 진 잎들이 소리 없이 흔들린다. 드디어 가을(fall)인 것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