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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의 독서일기(23)]단순해지고 싶은 날 읽는 시(詩)

2020-11-15     경상일보
▲ 장세련 아동문학가

삶이 나날이 복잡해진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때도 있다. 수십, 수백 갈래로 뻗쳐 있던 잡다한 안테나들. 이미 작동을 멈춘 것도 있다. 그런 안테나가 갑자기 작동하지만 무슨 일인지 황망해지는 날. 그런 날이면 단순함이 절실해진다.

단순해지고 싶어서 펼치는 것이 시집(詩集)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시인은 한 점 살을 깎듯 어렵게 썼겠다 싶은 시들로 충분한 위안을 얻고 싶어서다. 시인이 그렇듯 머리를 싸매고 쓴 시라야 독자에게 편안하고 쉽게 다가온다는 걸 좋은 시들을 통해서 깨닫기도 한다.

<고래에게는 터미널이 없다>(권영해/시와 표현)도 그런 시집 중 한 권이다. 국어교사로 오래 재직했음일까, 시인의 작품은 반듯하다. 시적허용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길 만한 잘못된 표현이 한 군데도 없다. 낱말이 다양하게 쓰였음에도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단정하다. 시를 읽노라면 가끔 그의 학생이 된 듯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기분 나쁘지 않다.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종종 점검하는 작품들 덕분이다.

시인이 되기는 쉽고/ 사람 노릇하기는 어려운 줄 알겠고, 사람들이/ 저마다 집 한 채 갖기 위해 애쓸 때/ 시인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성찰해야 함을 알겠다며, 조용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자세는 작품을 읽는 나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그저 문득, 그런 생각들을 하고 살 때 새로운 성장을 할 수 있겠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질 뿐이다.

울산에서 오래 산 만큼 시인의 시편에는 울산에 대한 애정도 다분하다. 슬도와 방어진 같은 지명(地名)에서도 알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마음에까지 더 깊은 애정을 쏟고 있는 것은 표제작이다. 고래는 울산의 상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동물이다. 그럼에도 고래바다 여행선을 타고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이 고래다. 한 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남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래의 희귀성에 대한 안타까움도 얼핏 읽힌다. 그 틈새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고래를 매개로 한 깨우침을 배운다. 한시도 머물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 덩어리가 터미널 없는 고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려나 턱없는 일이/ 난데없이 일어나서, 어처구니없는 상황만은 없어야겠다. 그리 살아야겠다. 장세련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