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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44)]나는 어제 ‘복합(複合)밥’을 먹었다

두가지 이상의 합성 일컫는 ‘복합’
본래 의미와 무관하게 분별없이 사용
각각의 참뜻 담아낸 명칭 고민해봐야

2021-03-25     경상일보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근년 들어 ‘복합(複合)’이란 접두사용 명사가 유행처럼 쓰인다. 아마 이 단어를 집어넣으면 모든 게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듯 멋있게 보여서 그런지, 명쾌하게 정의하기 힘든 시설이나 기능을 두루뭉술하게 합쳐서 표현하기 위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복합’ 유행시대이다. 화학적 또는 정신적 결합의 의미가 농후한 혼합, 융합, 통섭, 종합, 통합이란 단어들을 쓰기엔 다소 민망한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복합(compound, composite, complex, mix)이란 접두사는 두 가지 이상의 재료가 조합하여 다른 뛰어난 특성을 지닌 인공재료로서의 의미인 복합재료(composite material)나 프린터, 팩스, 복사기, 스캐너 등의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기기로 통합한 복합기(MFD, Multi-Function Product), 또는 봄바람, 인공위성, 지름길, 마른풀 등과 같이 형용사나 동사가 명사와 합쳐져 또 다른 명사가 만들어지는 경우, 이를 지칭하는 복합명사(compound noun)처럼 듣기만 해도 두 가지 이상의 기능과 구조를 담은 사실이 즉각 이해돼야 한다. 비슷한 표현으로서 복합동사, 복합문서, 복합구조, 복합시술 등이 있다.

대체로 최근에 만들어진 명칭들로서 복합이 들어가는 것에는 복합행정타운, 행정중심복합도시, 국제교류복합지구, 주상복합,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이 있다. 이들에서 사용되는 복합의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봐줄만하다. 행정이나 의료관련 시설과 주거편의 시설이 같이 들어간다든지, 주거와 상업시설이 같이 들어간다든지 하는 뜻이어서 비록 오래된 명칭은 아니지만 거의 일반명사로 취급받는다.

그런가 하면 복합문화센터, 복합커뮤니티센터, 복합웰빙센터, 복합엔터테인먼트, 복합리조트, 복합이벤트, 복합터미널, 복합웰컴센터, 온라인미디어복합아트센터 등에서의 복합은 없어도 되는 명사로서 그냥 ‘짬뽕’이란 뜻 이외엔 다른 뜻이 안 읽힌다. 특히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는 ‘복합 문화’라는 단어는 ‘단일 문화’의 반대어로서 쓴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원래 뜻인 멀티 컬처(multi-culture)나 크로스 오버(cross over)의 의미로 쓰이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웰빙, 커뮤니티,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이벤트, 터미널, 아트 등의 영어단어들은 단어 자체에 이미 복합적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굳이 복합이란 접두사를 동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매우 촌스러운 명칭들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진 참을 만하다.

‘복합금융’ ‘복합이득’이란 단어도 있다. 아마도 돈 외에 다른 유형의 금융과 이득을 포함한다는 뜻인 것 같고, 복합환승센터는 터미널에 편의시설이 합쳐진 시설이란 뜻이요, 복합공영차고지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를 대상으로 하는 차고지인 듯하고, 고기능성융복합화학소재지원센터는 굉장한 미래기술센터 같은데, 글쎄 나에겐 무척이나 부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나아가 복합이란 단어는 이렇게까지 쓰인다. ‘복합복지’, ‘복합카페’, ‘복합지식’, ‘복합장갑’, ‘복합열차’, ‘복합방수’, ‘복합환풍기’, ‘복합배(선박)’…. 여기에까지 이르면 복합이란 단어는 거의 남용(濫用)의 수준이다. 최근엔 ‘복합혁신센터’ ‘복합특화단지’라는 단어도 생겼다. 무엇을 복합적으로 혁신하고 복합적으로 특화하는 곳인지 목적어조차 실종되어 있다.

수많은 ‘복합 뭐시기’중에 최정상의 자리는 아무래도 ‘복합문화융합단지’가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멋지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모아모아 만든 정체불명의 비빔밥이다. 국내 어느 시의 사업명인데, 그 단지 안에는 한류문화공연장, 호텔, 주거시설, 문화공원 등이 들어간단다. 그냥 ‘K-드림시티’라든지 ‘K-빌리지’라든지 뭐 좀 상징적인 명칭을 쓰면 안 되나?

이러한 불편한 이름은 건물이나 시설이나 사업 등의 명칭에 무리하게 기능과 내용을 모두 포함시키고자 하는 목적과 함께 복합이란 단어에 대한 몰이해가 빚어낸 결과이다. 더욱이 이들 명칭은 외국어로 표현하거나 읽기도 매우 어렵다. 참고로 일본 삿뽀로시(札幌市)가 운영하는 실버복지센터는 그 이름을 ‘치에리아(지혜리아, 智慧ria)’라고 지었다. 명칭도 발음도 예쁠 뿐 아니라 그 속에 센터의 의미가 상징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참고할만한 부분이다.

먼지 털고, 진공소제하고, 걸레질까지 다 하는 청소는 ‘복합청소’, 변소에 샤워실이 붙은 화장실은 ‘복합화장실’, 여러 종류의 꽃을 묶은 꽃다발은 ‘복합꽃다발’, 클래식과 재즈를 합친 음악회는 ‘복합음악회’, 친구 겸 연인은 ‘복합연인’이 나올 판이다. 나는 어제 밥, 오뎅, 피자로 구성된 ‘복합밥’을 먹었다.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