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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탑순례]불국토 남산에 우뚝솟은 "신의 세계"

2004-01-27     경상일보
 
경주 남산은 작지만 큰산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며 기암 괴석이 많다. 남산은 불국토요, 경주인의 이상향이었다. 40여 개의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석불과 석탑이 무수히 많고 147곳의 절터가 있다. 그러하니 남산은 산 전체가 보물이요, 박물관이다. 그 산에 80여 기의 탑이 세워졌고. 대 가람이었던 용장사지 삼층석탑이야말로 하늘에 맞닿아 수미산 도리천에 우뚝 솟은 탑이 되었다.
 지난해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를 다녀왔다. 크메르인들은 앙코르왓이란 신의 세계를 건설했다. 평지에다 수미산을 만들고 60m에 이르는 탑을 세웠다. 앙코르왓은 장엄함의 극치로 신의 세계에 대한 위엄을 보여주는 훌륭한 건축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산지 가람을 만들고 경주의 진산인 남산이라는 수미산에 우뚝우뚝 탑을 세워 자연 친화적인 신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닿을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종교와 예술의 경지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상향을 남산에 탑을 세워 건설하려고 하였다.
 앙코르왓의 천상계를 오르는 계단은 90도에 가까운 경사로 숨이 막힌다.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올라야 한다. 신의 세계에 오르는 인간은 감히 고개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오르는 길은 아름답다. 가슴이 확 트인다. 골짜기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눈을 들 때마다 하늘은 푸르고 탑은 천상에 둥둥 떠 있다. 커다란 바위산인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도리천에 높이 솟은 이 탑이야말로 산아래 어디서 봐도 장엄하여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남산의 많은 절 중 용장사가 유명한 것은 경덕왕 때의 고승인 대현 스님이 계셨던 곳이요,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하며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한 곳이기 때문이다. 절터 어디쯤에서 그가 금오신화를 지었을까 늘 궁금하다. 탑이 새가 날개를 치듯 솟아오르는 형상으로 보이는 편편한 절터에서 오래 앉아 있어 보기도 한다. "그쯤에서 금오신화가 탄생되지 않았을까?" 자주 반문해 보곤 한다.
 남산의 탑 기행은 재미있다. 세상일이 하 수상하면 달려가 이골 저 골의 탑을 만난다. 가끔은 용장사지 삼층석탑 앞의 편편한 바위에 종일 앉아 있어도 본다. 탑이 만들어 주는 그림자를 따라 몸을 돌려가며 해가 질 때까지 있으면 행복하다.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아버지가 와서 몇 시간 쉬어가면서 말동무가 되었다. 젊은 청년과 어머니가 와서 지성껏 공을 드리고 내려갔다. 한 무리의 답사 팀이 와서 진지하게 탑 공부를 하였다. 금오산 정상을 오르던 한 떼의 등산객들이 높은 산 아슬아슬한 바위 끝에 선 이 아담한 탑을 보고 감탄을 했다.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수없이 했다. 순수한 신심이다. 서울서 왔다는 노부부는 남산 지도를 들고 며칠째 남산 탐구를 하고 있다며 탑을 만져보고 안아보고 조심스럽게 기대어 보기도 하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다. 세월의 무게가 이렇게 깊고 두터운 것인 줄 몰랐다고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파란 눈의 아가씨 두 명이 다녀갔고 훠이훠이 단숨에 올라왔노라 는 할아버지는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키고 탑을 돌아 삼존대좌불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그 앞에서 마시는 술이 훨씬 맛있다고 급히 모퉁이를 돌아갔다.
 제법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대구서 왔다고 했다. 용장사터가 가히 명당이라며 이 삼층석탑의 자연석 기단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높다며 조상의 지혜에 감탄을 했다. 높은 암반 위에 있어도 탑은 안정감이 있다. 2층 몸돌이 일층에 비해 체감 효과를 크게 준 탓이다. 또한 높이 4.5m의 단정한 규모다. 하지만 산 전체를 기단으로 친다면 가장 높은 탑이 될 것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보러 갈 땐 비파골이나 늠비봉 계곡을 타고 오른다. 하산 할 때는 당연히 용장골을 택한다. 비파골이나 늠비봉 또는 국사골을 택해 남산을 오르는 것은 최근에 복원된 탑이 이 골짜기에 있기 때문이다.
 비파골 능선에 있는 삼층석탑은 경부고속국도에서도 아스라이 보인다. 아마 들판 어디서나 보이는 이 탑은 밭을 메다가도 허리 한번 펼 때마다 보였을 탑이다. 국사골 삼층석탑도 남산리 일대 어디서나 조망 할 수 있는 산지 탑이다. 늠비봉 오층석탑은 오묘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하여 세운 백제계 석탑이다. 이런 복원된 탑을 보고 용장사지로 향하면 남산의 탑 기행은 흥미롭다. 특히 용장골로 하산하면서 되돌아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바라보는 맛은 일품이다. 칠불암가는 갈림길의 넓적한 바위에 앉아 정상을 올려다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삼층석탑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부셔 좀체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남산은 부처님의 나라다. 특히 보물 제 186호인 용장사지 삼층석탑이야말로 높은 곳에서 서라벌 땅을 굽어보는 복되고 복된 탑이다. 앙코르왓에서는 신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용장사탑을 만나러 갈 땐 신을 향한 그리움이 솔솔 인다. 9세기 말, 남산의 용장사지에 세운 이 탑이 있어 남산은 신라인의 이상향이었다.

 #주변 볼거리
 남산은 산 전체가 볼거리다. 골 골이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부처님의 나라다. 그래서 본다는 것보다 느낀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남산의 복원 사업중의 하나로 폐탑재를 모아 탑을 복원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복원된 탑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비파마을에서 시작되는 비파골로 오르면 능선에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남산의 서쪽 너른 들판 어디서나 보인다. 이 능선을 타고 계속 오르면 용장사지 석탑으로 이내 갈 수 있다.
 포석정이 있는 포석골을 따라 오르다 부흥사를 지나 약간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늠비봉이다. 늠비봉 오층석탑은 그 기단의 오묘함이나 경주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백제계 탑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는 탑이다. 통일전이 있는 남산마을에서 국사골 따라가면 복원된 국사봉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남산에는 계속 폐탑을 복원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남산의 복원된 탑을 보고 용장사지로 간다면 포석정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좋다. 울산에서 봉계 방향으로 가는 35번 국도를 타면 된다. 삼릉을 지나 약 600m 가면 포석정이다. 포석정에서 포석골을 따라 오르면 부흥사를 만난다. 부흥사에서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늠비봉이다. 늠비봉 오층석탑을 보고 다시 올라 금오정을 지나 남산 순환 도로를 따라 옛 팔각정 터로 간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국사봉 탑은 또 다른 맛을 준다. 국사봉 탑을 조망하고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금오산 정상으로 간다. 금오봉에서 도깨비 능선을 타고 내려가면 비파골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금오봉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순환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용장사지 팻말이 보인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용장골로 내려온다. 용장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포석정 입구에 내려 승용차를 가져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