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김남호의 철학산책(36)]선진국형 철학 방송을 꿈꾸며

2022-02-07     경상일보
▲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과학과 철학 사이의 대화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이는 곧 사회의 안녕과 직결되므로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사회갈등의 많은 부분은 결국 과학과 철학의 근본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며, 과학만으로 혹은 철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 같은 난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지 아닌지와 관련해 어느 쪽이 옳은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교육과 법, 종교의 근본 틀이 바뀔 수 있다.

2019년 미국 채프먼 대학 뇌 연구소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 17개 대학의 뇌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가 참여하여 ‘자유의지’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융합 연구를 하기로 합의했다. 국내의 경우 여전히 이과와 문과의 대립이 심각하고, 두 분야 사이의 건전한 토론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설령 철학이 문과에 속한다고 해도, 철학, 특히 형이상학의 많은 문제는 과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논의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철학 논증의 건전성을 평가할 경우 결국 과학적 지식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회를 통해 과학과 철학은 만나야 하지만, 그와 함께 공영방송에서 적극적으로 철학의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특히 ‘자유의지’ ‘인격동일성’ ‘행위와 책임’ ‘마음과 몸의 관계’ ‘현대 기술발전에 따른 여러 문제들’과 같은 주제들은 우리 사회현상을 통찰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지혜를 주기에 매우 중요하다. 이보다 더 좋은 입문자용 교육자료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자와 철학자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자가 윤리학이나 논리학적 물음에 우선 답할 필요가 없고, 철학자가 신경세포의 구조를 현미경으로 직접 연구할 필요가 없듯 서로 독자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쨌든 TV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상담’ ‘자기위로’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까지 옳고 그름을 따지고 물었다. 그게 철학의 정신이고, 오늘날 수많은 소크라테스가 하는 일이다. 그들이 흘린 피는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효과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