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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울산의 큰 자산 ‘정갑윤·박맹우’

‘산전 수전 공중전’ 겪은 경험 살려 국힘 지역 현역들의 지렛대 역할과 울산 갈등 조정자로 후배양성 기대

2022-05-12     김두수 기자
▲ 김두수 서울본부장(부국장)

정갑윤과 박맹우(대중 정치인이기에 직함과 존칭은 생략)는 공통점이 있다. 울산토박이로 끝없는 울산사랑이다. 70대의 왕성함도 비슷하다. 정이 많아 주변 사람이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도 유사하다. 정치적 경륜이 풍부하다는 점과 언젠가 생을 마감할땐 울산에 뼈를 묻는다는 것도 공통점일 것이다. 소줏잔을 함께하면 인간적 매력 또한 특별하게 느껴진다.

걸어온 길은 서로 달랐다. 50년생(73) 정갑윤은 기업인에서 1991년부터 선출직 경남도의원으로 출발, 울산 중구에서 내리 5선 국회의원에 국회부의장을 했다. 51년생(72) 박맹우는 1981년 제25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후 민선 울산시장 내리 3선에 이어 남구을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했다.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모든 것을 경험한 것도 같다.

지난해부터는 ‘뻘밭과 돌산’을 가리지 않고 6·1시장선거 공천티켓만 보고 달려온 상황. 때문에 누군가 면전에서 “너무 오래한다. 그만 포기하라”고 돌직구를 하기에도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천티켓을 목전에 두고 새까만 후배에다 국회경험 0선인 ‘김두겸’에게 빼앗긴 비애감도 비슷한 처지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무리 무덤덤하려 해도 밤잠을 설칠 때도 왜 없었겠나. 그래도 정갑윤은 경선관문이라도 통과했다. 하지만 박맹우는 최강 지지도에도 경선 자격조차도 ‘박탈’ 당했다. 정치적 억울함의 충격 또한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지점 공천경쟁 최후의 승자가 된 김두겸 시장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끝까지 돕겠다고 한 건 김 후보 입장에서도 든든한 응원군임엔 틀림없다. 그럼에도 두 거목이 현실정치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삼팔선의 봄’ ‘삼다도 소식’ 등 수백곡을 히트시키며 평생 대중가수로 살아온 백설희(1927~2010). 생전에 은퇴후 고희를 훌쩍 넘겼음에도 전화기를 옆에 두고 살았다고 한다. 모 방송 인기프로 ‘가요무대’에서 불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손주들을 보기위해 잠시 외국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며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고 아들 전영록이 방송에서 전했다. 평생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것을 사랑했기에 무대가 그만큼 그리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같은 맥락으로 볼때 대중정치와 표를 먹고 생존해온 정치 고수들이 하루아침에 추락한뒤 뒷방에서 지내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출마’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다. 현역 정치인들과 정면에서 겨루는 정치적 수명 또한 소멸됐다. 그럼에도 이들 두사람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여전한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정치적 자산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두 거물은 30~40년 정치행정을 펼쳐오면서도 ‘부패 친화적’ 오명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지역과 정치를 초월해 가족에게도 큰 자산이다.

그렇다면 이들 두 거물들이 향후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윤석열 정부에서 보이지 않는 지역발전, 국가발전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선 국힘 지역 현역의원들의 지렛대 역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오랫동안 여의도 정치현장에서 전국을 보게 되면 인간적·정치적 특성이 보인다. 지역별, 권역별 중장기 발전을 위해 원내외 정치인들의 적재적소 인물추천을 해야한다. 견제보다는 원내외 협력의 정신을 바탕으로 윈윈하는 자세다.

둘째, 울산의 진정한 조정자 역할이다. 보수와 진보 등 이념적 가치를 떠나 사회 곳곳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줄이는 국민화합, 시민화합이 절실한 시점이다. 시장후보 공천에서 추락한 게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인간적 신뢰의 자산은 단 시일에 쌓을 수도 없다. 두 사람은 이젠 지역 보수의 원로격이다. 경쟁적 관계에서 훌쩍 뛰어 넘어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그동안 노력과 기여도 많았지만, 국가와 당으로부터의 수혜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0년생으로 올해 103세 김형석 박사는 ‘100년을 살아보니’라는 자신의 책에서 의미심장한 ‘사유’(思惟)를 담았다. “‘80세가 되면 그래도 존경스러운 삶을 이어왔는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두수 서울본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