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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36)]독립선언서 기초·위대한 교육자 美 제퍼슨 대통령

노예 소유·여자노예와 사생아 논란에도 민주주의 개념 확립, 정치-종교 분리 등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위대한 업적 추앙

2022-07-13     경상일보
▲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러시모어산에는 4명의 대통령 얼굴 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이다. 그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 기초자였으며, 미국 제3대 대통령을 지냈다. 재임기간 평화적으로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땅을 매입해 당시 미국 영토를 2배로 확장했다. 제퍼슨은 서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경작할 수 있을 때라야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내에서 이 위대한 대통령에게도 가혹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1776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위대한 문구를 작성했지만, 제퍼슨은 농장주로서 다수 흑인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흑인 여자노예와의 사이에 사생아가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1915년 미국 뉴욕시 의회에 설치된 제퍼슨 동상을 역사 바로잡기 차원에서 뉴욕시공공디자인위원회가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이 2021년이다.

정치는 항상 논란거리임을 예상이라도 한 듯, 그는 자신의 묘비명에서 대통령직을 빼는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묘비명은 그의 2층집 몬티첼로(Monticelleo)에 세워져 있다: ‘여기 토머스 제퍼슨 잠들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며,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안의 제안자이며, 버지니아대학교의 아버지이다.’ 국무장관, 부통령, 대통령 등 직함보다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확립한 사상가요 교육자로서의 업적을 스스로 더 높게 평가한 현인이었다. 그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간이라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깡패와 군대를 동원해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고, 정권 연장을 위해 부정선거, 개헌, 인권탄압 등 별별 악행을 저지른 우리 정치인들이 200여년 전의 제퍼슨을 조금이라도 본받았더라면라는 차원에서 그의 업적을 되짚어본다.

첫째, 그가 대표기초한 미국 독립선언서의 핵심인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은 독립전쟁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고, 뒤이은 프랑스혁명, 20세기 초 조선 독립선언서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재산과 신분에 상관없이 인간의 권리는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지 정부가 준 것이 아니며, 정부는 국민의 공복이지 지배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제퍼슨은 대통령 2차 임기를 마쳤을 때, 3차 임기금지 법규정은 없었지만, 조지 워싱턴의 선례에 따라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겸손한 지도자였다.

둘째, 제퍼슨은 정치종교분리 원칙에 입각해 버지니아의 종교 자유령을 주장했고, 교회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786년 결국 자유령은 통과됐다. 당시 각 주는 나름의 주 공식 종교를 지정하기도 했다. 이때 제퍼슨은 ‘진리는 위대해서 홀로 내버려둬도 승리한다. 우리는 성공회도, 가톨릭도 침례회도 아니다. 모두 크리스천이다.’라는 말로 국교제 폐지를 주장했고 새 공화국에서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원칙을 확립했다. 종교 자유령은 자기들의 견해와 사고방식만이 진실하고 오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거짓 종교라고 선언했다. 이 생각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셋째,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소재 버지니아대학교에는 설립자 제퍼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전 생애를 통해 교육에 관심이 깊었던 제퍼슨은 대통령 퇴임 후 1818년 이 대학을 설립했다. 캠퍼스를 직접 구상하고 건물을 설계했고 최초의 ‘교육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미국 대학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학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교육분야를 중시해 미국의 과학기술발전의 기초를 다졌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무상교육을 주장했고 초등학교 공교육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위대한 업적을 국가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워싱턴 D.C.에는 ‘제퍼슨 기념관’이 건립됐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