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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 탑순례〉22.지혜의 바다 -구황동 삼층석탑-

2004-05-25     경상일보
탑 기행을 마치고 오면 아들은 어떠했는지 꼭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형용사나 부사를 잔뜩 붙여 흥분된 목소리로 일일이 설명하려고 애쓴다. 매번 가만히 들어주던 녀석이 어느 날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탑은 탑일 때 가장 멋진 거예요
 머리가 찡하게 아프고 정신이 번쩍 났다. 탑은 탑일 때 가장 완벽한 부처님의 집이 되는 것을 아들 녀석이 깨닫게 해 주었다.
 탑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보문 들을 넌지시 내려다보고 서 있는 구황동 삼층석탑을 꼽을 수 있다. 구황동 삼층석탑이 아침햇살을 받아 우직한 모습으로 너른 들판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래 바로 이 탑이야! 하고 저절로 감탄을 하게 된다. 아무런 수식도 필요 없고 장황한 설명도 필요 없는 탑다운 탑이기 때문이다. 늠름한 기상은 젊고 씩씩하다.
 탑 그림을 그리는 젊은 화가 우 선생을 데리고 가을 아침에 이 탑을 만나러 갔었다.  우 선생은 오랫동안 탑을 지켜보며 떠나기를 싫어했다. 그림에서도 일체의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녀는 명료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라고 아주 좋아했다. 아니 약간은 들떠있었다.
탑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도 그림과 다를 바가 없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담백함은 신라인의 미감을 느끼게 한다. 우람한 덩치나 뛰어난 조형미는 없어도 풍기는 경건함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구황동 삼층석탑은 그만이 지닌 당당함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진평왕릉에서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다. 너른 들판을 사이에 두고 왕릉과 탑이 마주하고 있다. 온갖 꽃이 왕릉 주위로 피어나는 봄날에 탑을 바라보면 아지랑이에 탑은 아른아른 무늬를 그려낸다. 그러다 이내 점이 되고 선이 되기도 한다.
 들판은 지혜의 바다가 된다. 그 바다를 건너 다다르는 곳에 번뇌를 벗어 주는 듯 탑이 서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늦가을, 가끔 바람이 물어 황금물결이라도 일면 바다를 건너는 마음도 일렁인다. 탑도 깃발처럼 흔들리고 황금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린다.
 경북 경주시 구황동 황복사터에 서 있는 국보 제 37호인 구황동 삼층석탑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여 세워진 탑이다. 1943년 해체 수리 때 탑 속에서 많은 사리 장엄구가 나왔다. 순금 여래좌상(높이 12.2)과 순금 여래 입상(높이 14)이 나왔다. 이 아름다운  불상들은 국보 제 79호와 80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사리함 뚜껑 안쪽에 장문의 명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 효소왕이 부왕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세웠다고 한다. 탑의 건립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어 더욱 귀중하게 여겨진다.
탑의 서쪽 밭둑에는 자가 선명한 귀부가 흙 속에 묻혀 있다. 귀꽃 무늬도 아름답다. 왕실의 원찰이었던 황복사의 옛 영화를 짐작해본다.
 이중기단을 갖춘 삼층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탑이다. 몸돌과 지붕 돌은 각각 한 개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몸돌의 높이는 이층부터 급격히 낮아진다. 지붕 돌의 층급 받침은 매층 5단이다. 낙수면의 경사는 완만하여 단아함을 보여주며 전각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있다. 왕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한 탑이다. 황복사지 탑이야말로 신라 석조미술에서 왕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문화재다.
 탑은 진평왕릉을 마주하고 저 만치 선덕여왕릉이 있는 낭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리고 들판 끝으로 숲머리 마을과 명활산을 바라보며 천년이 넘는 세월을 무심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 저물 녘에 탑 앞에 서 본다. 해 뜨는 아침에 바라다 본 탑과 느낌이 다르다. 조금은 외로워 보인다. 힘과 부가 넘치는 통일 왕국의 수도였던 그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탑이라 든든하기만 했는데 사람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조용한 동네의 해질 녘은 쓸쓸하다.
 탑 주변으로 초록이 짙다. 온갖 꽃도 피고 열매도 달렸다. 메꽃이 덩굴손을 뻗어 풀밭을 뒤덮었다. 지칭개가 탑을 닮아보려 보라색 꽃을 피운 채 발돋움이 한창이다. 집집마다 덩굴장미가 담을 덮고 있다. 탑 앞으로 선 살구나무와 자두, 감나무가 빼곡이 열매를 달았다. 해 저무는 들판을 바라보는 쓸쓸함은 잊을 수 있다.
 아 그렇구나. 이 탑을 보러올 땐 언제나 동행이 있었다. 탑을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찾아 꼭 동행을 했었다. 때론 여러 명이 같이 오기도 했다. 오늘은 혼자다. 혼자 탑 주위를 서성인다. 그러다 솜방망이나 지칭개처럼 발뒤꿈치를 자꾸 들어 본다. 탑은 내가 닿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다. 북쪽 구릉으로 올라가 본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탑은 훨씬 멋있다. 보문 들은 더 넓어 보이고 낭산도 가까워진다. 탑과 건너편 진평왕릉이 일체감을 준다.
 5월의 끝자락. 뉘엿뉘엿 해지는 시간에 지혜의 바다를 건너 진평왕릉으로 향한다. 어둠이 깔리기 전에 왕릉의 잔디밭에 앉아 탑을 바라보아야겠다.

#주변 볼거리
구황동 삼층석탑이 있는 곳과 가까운 낭산 서쪽에 있는 능지탑은 무덤 형태의 탑이다. 이 탑은 능시탑 연화탑으로 불리었는데 허물어져 있던 것을 20여년 전에 지금의 모습으로 쌓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문무왕이 임종 후 10일 이내에 고문 밖 뜰에서 화장하라 상례제도를 검약하게 하라고 유언하였으며 이곳이 신문왕릉, 선덕여왕릉과 이웃한 것으로 보아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추정하고 있다. 기단의 사방에 12지신 상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쌓아올린 탑이다.
 구황동을 나와 보문단지 쪽으로 가면 천군동이 나온다. 천군 초등학교 앞 들판에 삼층석탑 두기가 동서로 나란히 있다. 보물 제 168호인 천군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의 건실함을 그대로 간직한 장중한 탑이다. 8세기에 건립된 이 두 탑은 높이나 크기면에서 구황동 삼층석탑과 닮았다. 양식도 거의 같다. 구황동 탑과 천군리 쌍탑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경주로 가다 박물관 못 미쳐 네거리에서 우화전하면 포항으로 가는 국도다. 우회전하면 바로 굴다리가 나오고 그 굴다리를 통과하여 500m 쯤 가면 오른쪽에 황복사지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시멘트 길을 따라 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동네가 있고 동네 입구에 구황동 삼층석탑이 있다. 탑 앞에 주차장도 있다. 이 삼층석탑이 있는 마을에서 동네 길을 따라 낭산쪽으로 가면 능지탑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와 다시 보문단지로 향한다. 보문단지에서 불국사로 향하는 오른쪽이 천군동이다. 경주 문화엑스포장 못 미쳐 천군동 들판에 삼층석탑 두기가 있다. 길에서도 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