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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영의 미술산책(75)]기록과 예술, 나사리의 기억

2022-12-21     경상일보
▲ 기라영·구지은·송주형 ‘은모래마을의 노래’. 4ch video, 프로젝션맵핑, 10min, 흰모래, 설치구조물, 가변설치, 2022.

기록의 힘은 ‘기억의 지난 후에도 다시 불러 반복적으로 재인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은 곧 역사를 바르게 쓰는 것이 된다. 기록연구는 문화적·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으로 이어져야한다.

원자력이 가까이 위치한 울주군 서생면의 나사리 일대는 향후 10년 이내로 어업이 종료된다. 나사리를 평생 삶의 터전으로 살아 온 실버세대들의 이야기를 지금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울주군이 사라져 가는 마을들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훗날 지역사에 큰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예술작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 또한 굉장히 흥미로운 일인데,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왜곡되고 변형되는 등 자유자재로 편집될 수 있는 예술가의 기존의 작업과는 다른 형식의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문학가, 기획자, 예술가, 행정가가 마을과 사람을 기록하고 예술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했다는 것은 지역의 예술사에 있어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라 생각된다.

▲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

나사리(羅士里)의 지명이 가지는 의미인 ‘드넓고 긴 모래’는 전시장에 쏟아 부은 2.5t의 화이트 샌드로 상징화되고 그 위에 나사리 마을의 풍경과 관련된 영상이 4채널로 맵핑되어 비춰진다. 그 뒤에는 주민들의 인터뷰 영상과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발췌한 텍스트가 걸려 있다. 이 텍스트들은 마을의 주어업 중 하나였던 미역산업과 관련하여 미역 건조대를 재현한 틀 위에 아크릴판에 인쇄되어 얹혀져 있다. 오래 살아 온 마을주민들의 기억으로 그려낸 마을지도 작업도 전시장 입구에서 볼 수 있다.

‘나사리의 기억, 은모래 마을의 노래’ 전시는 12월19일부터 내년 11월 말까지 울주민속박물관(울주군 온양읍 외고산1길 4-19) 2층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기라영 화가·미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