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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36)]노년의 미덕

삶을 되돌아보고 생을 완성하는 시기 초고령사회, 노인경쟁력=국가경쟁력 노년시간 경영할 새로운 기초 다져야

2023-01-04     경상일보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60대이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휴식이나 은퇴와 같은 말들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활동을 개척하면서 인생 2모작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찾지 못한 경우에도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열정과 역량이 아직 남아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러다보니 법적으로 노인으로 인정받는 나이를 넘어서도 노인이라는 말을 수용하기 싫어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라는 호칭이 노인들로부터도 별로 긍정적인 의미를 얻지 못하는 까닭이다.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는 통계수치는 모두를 걱정스럽게 하고, 조만간에 닥쳐올 초고령사회의 일을 예측하는 일은 염려를 넘어서 두려움을 불러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인의 영역 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늙어간다는 말보다는 익어간다는 말의 뉘앙스를 훨씬 긍정적으로 여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이에 따라 몸과 마음은 조금씩 변해간다. 질병과 같은 예상 밖의 마주침이 아니라도 우리의 몸은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항상 쇠약해지고 허물어지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온 주요한 성과물들이 삶의 끝자락에서 얻어지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언제부턴가 역사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의 삶을 나이를 기준으로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들이 60살이 넘어서 이룩한 창조적인 생각들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칸트는 60대 후반에 세계철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3대 비판서를 완성했다. 괴테는 82세에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를 집필하고 그 다음 해에 생을 마감했다. 톨스토이는 70세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소설 <부활>을 완성했으며,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출간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 남겨진 재능과 시간을 한 톨도 남김없이 소진한 후 생을 마쳤다. 생을 마쳤다기보다는 생을 완성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노년기가 생을 완성하는 시기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선각자들이다.

물론 이들은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천재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들과 같이 한 생애를 바칠 만큼 의미 있는 목표를 찾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비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모습과 태도를 유지하고 싶은가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낸 삶이 만족스럽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자신의 생애를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적지 않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노동의 의무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으면서도 아직은 자신의 육신을 지배할 힘이 남아 있는 60대가 바로 그러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노년의 시간을 경영하는 새로운 기초를 다질 수 있다면 있다면 얼마나 보람스러운 일이겠는가. 우리가 걱정하는 초고령사회에서는 노인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들이 다시 직업의 세계로 뛰어 들어 노동을 보태는 것만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은 시간 동안 가능한 적은 자원을 소비하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인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한 지혜와 결단은 국가 공동체뿐만 아니라 가족공동체로부터도 박수를 얻을 것이라 믿는다. 의료쇼핑을 걱정하고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노인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얻는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