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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칼럼]생불여사(生不如死)

당 대표 공천권 장악 치열한 샅바싸움 각당 자율에 맡긴 공천제도 불신·잡음 말뿐인 정치개혁에 정치혐오만 깊어져

2023-03-07     경상일보
▲ 신면주 변호사

야당 대표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의 각종 인·허가 관련 비리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의 청구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야당에서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방패막이로 소위 방탄국회를 열고 이재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까스로 부결시켰다. 이 대표는 소년 공원, 검정고시 등을 거친 정치적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영민한 머리와 강한 승부 근성으로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당선에 이어 일약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더니 각종 도덕적 흠결과 비리 의혹에 시달리면서도 0.7%의 표 차이로 낙선하는 저력을 과시한 정치적 풍운아다.

이번 사태로 이 대표가 받은 정치적 타격은 약 30여 이탈표가 생겨 당내의 불신을 받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간 여러 차례 언약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의 약속을 저버린, 믿을 수 없는 정치인으로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불체포특권은 시민의 대표인 의회를 왕의 절대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603년 영국의 ‘의회특권법’으로 태동한 것이다. 막강한 형벌권을 가진 국가권력이 국민의 대표인 의원을 정치적 이유로 탄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민주 헌정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제도다.

우리 헌법 제34조에서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폐지할 수 없다. 국회법 등에서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의 제한 규정을 두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불체포특권 폐지를 쉽게 들먹이는 것은 정치적인 쇼에 불과하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당당히 응했더라면 풍운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삼권분립과 의회 중심의 민주주의가 확립된 현대국가에서 불체포특권은 부패정치인의 방패막이로 남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유럽의회에서는 ‘푸무스페르세쿠티오니스(Fumus Persecutionis:탄압의 징후)’ 원칙을 두고 있다. 즉 수사대상인 행위가 몇 년이 지난 시점이거나 선거기간에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진 경우, 수사의 단서가 된 고발 등이 정치적 반대자나 익명의 인물에 의해 제기된 경우, 동일한 사건에서 해당 정치인만 수사 기소한 경우, 체포·기소하려는 의도에 심각한 의구심이 있는 경우 등을 불체포특권 인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도 점차 불체포특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입법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이나 제한 입법도 내용이 추상적이기는 마찬가지여서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여전하므로 결국 국회의원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제헌국회 이후 총 61건의 국회의원체포 동의안 중 가결된 것은 13건에 불과한 것을 보면 기득권 수호에 철저한 국회의원들의 자율적인 규제는 힘들어 보인다. 정도를 넘는 잡범들에 대한 방탄이 계속될 경우 절대 왕권에 대항하기 위해 의회에 부여한 숭고한 특권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국민에 의해 회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 내외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가 당대표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해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사정은 당 대표선거가 막바지에 이른 여당도 마찬가지이다. 당대표 선거가 당내 민주주의 훼손 의혹, 지나친 네거티브, 심지어 색깔론까지 등장하는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국 공천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샅바싸움 때문이다.

민주 헌정의 3권 중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주권재민의 원칙상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정당정치 구조하에서 국민은 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상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천제도는 주권재민의 전제가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선거제도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엄격히 관리되지만, 공천제도는 각 당의 자율에 맡겨 공천을 둘러싼 불신과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총선 전야에는 늘 공천제도 개혁의 화두가 등장하지만 결국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루묵’ 공천으로 전락함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매번 구두선에 거치는 정치개혁 타령에 국민의 정치혐오는 깊어만 가고 있다. 앞으로 난관을 뚫고 살아남은 양당 대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감한 정치개혁으로 생불여사(生不如死·살아 있으나 죽은 이만 못하다)의 ‘졸보’ 정치인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