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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칼럼]태화강 대나무

죽순의 성장 위한 대나무의 희생처럼 우리사회도 기성세대의 희생·양보로 청년에 더 많은 기회와 역할 부여해야

2023-03-14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바야흐로 봄이다. 태화강가에도 초록색이 눈에 띄게 늘었고 머지않아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태화강의 명물 대나무 숲은 누런 빛깔을 띠고 있다. 멀리서 보면 춘삼월에 가을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다른 식물들은 봄맞이가 한창이라 물이 오르고 있는데 왜 대나무는 잎이 마르며 갈색으로 변할까. 바로 죽순 때문이라고 한다. 곧 땅을 뚫고 올라올 죽순을 위해 대나무의 모든 영양분을 죽순으로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 죽순의 성장을 위한 대나무의 희생이다.

누런 태화강 대나무는 우리 젊은 세대를 생각하게 한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치솟는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고령화는 초고속화 하고 있다. 지금 인구구조로 볼 때 현 2030세대가 미래에 짊어질 부담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비, 의료비, 연금 등에 소요될 천문학적인 비용이 이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1000조가 넘는 국가부채의 청산도 이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젊은 세대에 대한 배려와 격려에 너무도 인색한 편이다.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고 버티고 앉아 기득권을 누리려는 시도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경력을 빌미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젊은 세대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대나무의 자기희생이 없다면 새로운 죽순은 나오지 못할 것이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대나무 숲은 황폐해 지고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세대들이 소외되고, 충분히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의 희생과 양보가 절실한 시점이다. 죽순을 위한 대나무의 희생처럼, 기성세대는 기득권을 조금 내려놓고 새로운 세대에게 충분한 기회와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치·행정 분야에 청년들을 획기적으로 등용해 젊은 세대 스스로 자기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으면 한다. 지금처럼 장식용이나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결정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선진국들에는 30~40대 장관과 정치지도자가 수두룩하다. 이에 비해 우리 젊은이들은 선거 때마다 동원대상이 되거나 팬덤정치의 부산물 정도로 취급받고 있을 뿐이다. 미래는 386세대가 아니라 청년세대에 달려 있다. 이들의 열정적 에너지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개방해야 한다.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노조가 노동시장을 장악하고 기존 노동자들의 권익만 생각하면 청년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취업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제로섬 상황에서 기존 노조가 기득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청년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 모두 힘들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죽순을 배려해 함께 성장하려는 대나무의 마음을 헤아렸으면 한다. ‘죽순을 위한 배려’는 대학을 비롯한 학문분야에서도 필요하다. 요즘 대학은 재정을 이유로 기존 교수가 정년퇴직을 해도 그 자리를 채우지 않는다. 많은 젊은 박사들이 겨우 버티다가 변변한 연구결과도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태화강 대나무는 지금은 누런 빛을 띠고 있지만 죽순이 다 자라고 나면 곧 건강한 녹색으로 변하며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죽순을 위한 일시적인 희생 끝에 더욱 울창하고 풍성한 대나무 숲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양보와 희생도 단기적으로는 고통스럽겠지만, 죽순과 대나무가 순환하며 울창한 숲을 이루듯이, 결국에는 우리사회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더욱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봄볕같이 따뜻한 격려를 보내자. 이들이 우리의 미래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