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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입법의 기술

비민주적이고 반의회적 법률 제정은 극심한 사회 혼란과 갈등만 야기 의회 입법에 대한 자기성찰 필요한때

2023-04-11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입법권은 의회의 고유권한이다. 절대군주시대가 종식되고 시민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부가 집행하는 권력분립의 민주주의 제도가 확립되었다. 법률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입법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의회가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가면서 입법을 진행하느냐 하는 것이다. 입법에도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세계 여러 나라의 입법과정을 보면, 민주화의 정도나 정치문화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의회에서 의원들끼리 주먹질을 벌이는 경우도 있고, 시위나 폭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질서 있는 절차에 따라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입법이 진행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과거에는 의사당 내에서 몸싸움도 하고 날치기 통과도 있었지만 이제 이런 모습은 보기 힘들다. 국회선진화법의 영향이다. 그래서 고성을 지르거나 집단으로 퇴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커다란 물리적 충돌 없이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우리 국회의 입법과정은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의회의 존재 이유는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의회는 특정 정파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대표이다.

입법과정에서 다양한 국민들의 의견을 조정하고 결집하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야당은 회기 쪼개기, 무소속 의원 활용하기 등의 꼼수를 동원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면서 일방적인 입법을 강행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어떤가. 야당의 입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대안 제시는 극히 미흡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간호법, 언론관계법, 노동법 등에서 모두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국회에서 법률이 한번 만들어 지면 이를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법을 만들 때는 당연히 국회가 중심이 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제도적으로 국회 차원의 청문회나 공청회 등을 개최할 수도 있고 또는 의원 개개인들도 이런 노력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주적 과정은 대부분이 생략되고 격심한 대립 속에 일방적인 입법이 강행되고 있다. 의회의 입법과정을 통해 갈등과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입법과정은 정책경쟁의 장이다. 여야가 서로의 정책안을 내놓고 협상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합리적인 법안이 만들어지며 이해관계도 균형 있게 결집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서로 대안을 내놓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전혀 없다. 그저 자기들의 지지 세력에만 신경 쓸 뿐이다. 의석수를 무기로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폭주 야당’과 뚜렷한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손을 놓고 있는 ‘무능 여당’이 합작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여러 영역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우리의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해 가는 나라들도 많다. 그럼에도 정치와 입법 역량은 여전히 한참 후진국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준 낮은 기술로 만든 제품은 조악해서 쓸모가 없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얼마 사용하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원의 낭비일 뿐이다.

입법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민들이 숱하게 목격한 바가 있듯이, 민주적 절차가 생략된 법안은 내용도 엉망이고 당연히 성과도 거둘 수 없다. 머지않아 개정되거나 폐기될 수밖에 없다. 지금같이 비민주적이고 반의회적인 입법과정에서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법안이 나올 수가 없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여야 모두 의회입법에 대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유능하고 민주적인 ‘입법기술자’들이 등장해 국회의 입법과정이 쇄신되기를 기대해 보지만, 불행하게도 전망은 밝지 않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