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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 칼럼]대통령의 노래

한미 정상이 노래로 궁합 맞춘 것처럼 한미동맹 강화 통한 굳건한 외교 안보 반도체·IRA 해결 등에도 머리 맞대길

2023-05-02     경상일보
▲ 신면주 변호사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 대통령은 만찬장에서 ‘아메리칸 파이’라는 팝송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박근혜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의 오찬장에 박 대통령의 애창곡 거북이의 ‘빙고’ 가 울려 퍼져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정상 간의 만찬에서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겉으로는 만찬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이번 정상회담에 공을 들이고자 하는 고심의 산물로 여겨져 짠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노래는 바이든 대통령이 요절한 아들과 즐겨 불렀고, 윤 대통령도 평소 애창하던 팝송이라고 하니 두 정상이 노래 궁합은 잘 맞은 셈이다.

우리가 먼 나라 미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조선책략’이라는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중·후반 산업혁명으로 부국강병을 이룬 서양 세력이 동양을 식민지화하는 서세동잠(西勢東漸)의 시대가 밀려오자, 전근대적 유교 사회에 머물고 있던 조선 왕조는 우왕좌왕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된다. 조선책략은 1880년 청의 외교관 황준헌이 러시아의 남진 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 청, 일본의 외교정책을 기술한 책으로,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의 조야에 소개했다. 이 책은 서두에서 ‘조선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지여서 외세가 반드시 다투게 마련이며, 조선이 위태로우면 중동의 형세도 날로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미국을 유럽 국가의 압제에 대항해 세운 나라로 예의를 중시하며, 남의 나라의 영토와 인민을 탐내지 않는 대인배의 나라로 평가하면서 ‘친중’ ‘결일’ ‘연미’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선의 개화파들과 고종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이만손 등 척사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882년(고종19년) 5월22일 서양 국가와는 최초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미국과의 인연이 처음 시작된 날이다. 이때 처음으로 태극기가 제작돼 국가의 상징물로 사용됐다. 조약 제1조의 ‘만일 제3국이 부당하게 대하거나 억압적으로 대우할 경우 타 방국은 통지를 받은 대로 중간에서 잘 중재하여 우의를 보여야 한다’라는 구절을 믿은 고종은 이후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미국의 중재를 요청했다. 당시 세계의 주도국은 영국 러시아 프랑스로, 미국은 고종의 기대와는 달리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오히려 자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맺은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했다는 오해를 받게 된다. 결국 영·일 동맹으로 영국으로부터 조선 지배의 허락을 받은 일본은 1910년 조선을 합방하기에 이른다.

1880년의 황준헌이 바라본 동북아 정세와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이 공산화돼 이념 대결의 양상을 띠게 되었고, 2차 대전에 패한 일본은 자유민주체제로 탈바꿈하여 단기간에 세계 최강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 자유 진영의 수호자가 되었다는 점 등에서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이념 대결이 더해져서 충돌하고 있고, 왕조체제로 변한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등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더 불안한 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황준헌의 시각은 유효하며 이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국이 되는 날까지의 지정학적 숙명이기도 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미국의 역할을 감안할 때 미국과의 동맹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주변 강대국 및 북한과의 평화적 경제교류 또한 중요한 일이므로 상황에 따른 줄타기 외교를 지혜롭게 전개할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강화를 사대주의 운운하거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친일·반일의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미시안적인 단견에 불과하다. 이번 방미로 한미동맹은 강화되었으나, 한편 대중·대러 관계의 정립, 북한 핵에 대한 확실한 대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해결 등이 미완의 숙제로 남겨져 있다. 두 정상이 노래 궁합을 잘 맞춘 것처럼 남은 숙제에 대해서도 찰떡궁합의 지혜를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한다. 변호사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