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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정당의 수준

수준이하의 ‘정치 현수막’ 시민들 눈살 자극적이고 혐오적 표현으로 갈등 조장 정치·정당에 대한 반감, 무당층만 늘어

2023-05-09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가히 ‘현수막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상업적 광고는 물론이고 행사, 공연 등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정당들의 정치적 선전구호가 담긴 현수막들이 무차별적으로 거리에 내걸리면서 무질서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수준의 나라로서 다양하고 효과적인 의사전달 수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의 거리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빠르고 정확한 최첨단의 통신수단이 자리 잡은 21세기에 현수막과 같은 원시적인 방법이 통할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 정당들의 사고방식이 놀라울 뿐이다.

난무하는 정치 현수막의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선동적인 구호는 보통이고 자극적인 표현이나 거의 욕설에 가까운 것도 있어 보는 사람들의 낯을 뜨겁게 한다. 분명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내걸었을 텐데, 이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불쾌함 그 자체다. 지지는 커녕 오히려 반감을 가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극렬 지지층은 강렬한 문구를 보면서 통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상식을 가진 보통의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 정치현수막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빙자로 무제한의 현수막을 허용하고, 자극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을 통해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현재 우리 정당의 수준이다.

정치학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만, 정당의 목표는 권력의 획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정당은 유권자들이 다양한 요구를 결집(interest aggregation)하여 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이 본래의 기능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의 이해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정당은 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너무도 어렵다. 어느 집단도 자신의 이익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대립하는 이익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우리 정당들은 타협과 조정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갈등 조장에 앞장서고 있다. 허접한 수준의 정치 현수막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간호사법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하다. 당사자들 간의 이해관계가 서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해관계 집단들의 요구를 면밀히 살펴 조정 가능한 부분을 발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 가면서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국가의 정당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 정당들은 이를 수행할 의사도 역량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수 야당은 무리해서라도 일단 법을 통과시키고 본다. 소수 여당은 무력하게 대응하다가 대통령의 거부권만 바라본다. 그리고 서로를 비방하는 현수막을 거리에 내 걸고 마치 자신들은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남 탓으로 돌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무책임한 야당과 무능한 여당의 절묘한 콜라보다. 결국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만 커진다.

다수의 일반 유권자들을 의식하는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중간에 있는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행태가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모두 국민들은 안중에 없고 극렬 지지층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국민들 사이에는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나라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정당들이 3류 후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현수막 정치’를 벌이고 있다. 이를 보는 국민들은, ‘도대체 우릴 뭘로 보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국민들은 무한정 인내하지 않는다. 정치와 정당에 대한 혐오감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정당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선 저급한 현수막부터 걷어내는 것이 좋겠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