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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제의 독서공방](18) 김선지의

양파껍질 벗기기와 알깨기 놀이

2023-06-19     경상일보
▲ 설성제 수필가

일상에서도 눈에 보이는 대로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그 느낌이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다. 내내 얼얼한 뒤통수에 손을 얹고 휘둥그레지는 눈을 굴리며 ‘설마?’라는 말만 되뇌게 된다.

책 갈피갈피 펼쳐진 그림마다 그 시대상을 알고 보니 그야말로 그림 한 귀퉁이를 통해서도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까지를 알게 된다. 양파껍질 벗기듯 스토리를 벗겨나가는 재미가 좋다. 어떤 그림에서는 생명이 화폭을 찢고 나오는 것만 같다. 진흙이 묻은 채로, 피가 묻은 채로 생명이 그림 밖으로 기어 나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날개를 돋치고 날고 싶어 한다. 독자는 불현 듯 이 생명을 받았으니 나름 품고 키워야할 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무지몽매에서 벗어난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 수 있으랴.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관>(브라이트 2023)은 ‘명화 거꾸로 보기’와 ‘화가 다시 보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화의 숨은 이야기와 화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백색 조각의 신화, 현대에 입각한 피그말리온의 행복, 중세에 전라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아다닌 고다이바의 신화와 진실의 관계, 비너스의 황금비율, 책 표지에 소개된 ‘추한 공작부인’의 모습을 통해 외모에 대한 시대적 해설 등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화가 다시 보기’부분에서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고흐와 고갱을 비교한 이야기, 영국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화가 마담 르브룅의 우정, 미술사에서 사라진 화가들에 대한 내용을 통해 지적 양식이 쌓여가는 기분이다.

책을 읽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로 내가 가진 고정관념이다. ‘설마?’라고 한 번씩 내뱉을 때마다 양파 껍질 벗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더 이상 껍질이 벗겨지지 않을 것 같은 그림을 붙들고 뭔가를 후벼 파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이 책에서 본 게 또 다는 아닐 것이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껍질은 계속 벗겨질 것이고,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생명은 알깨기를 계속 할 것이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 그 자체다.

설성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