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최진숙의 문화모퉁이(2)]러쉬모어산, 그리고 큰바위 얼굴 이야기

유명 기업인 흉상 조형물 건립으로 울산의 인구 소멸 막기에는 역부족 청년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우선

2023-06-21     경상일보
▲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지난해부터 유행해온 인터넷 밈 중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는 게 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요?’라고 묻자, 질문을 받은 사람이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을 꺼내면서,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말하고는 춤을 추면서 저 멀리 가버리는 짧은 영상의 한 장면이다.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며 듣고 있는 노래 제목을 물어보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유래된 것인데, 언젠가부터 무슨 질문을 해도 이어폰 때문에 질문을 들을 수 없었던 사람이 자신이 듣고 있던 노래 제목을 답하는 밈이 된 것이다. 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1위 공약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한 가수가 할 말이 없어서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답하고 싶지 않거나, 대답하기 어려울 때 하는 동문서답의 한 방식이 된 것이다. 웃음을 자아내기는 하나, 질문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인 0.78로, OECD 38개국 중 최저 기록이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지역 소멸, 경제 후퇴, 가족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저출생의 원인도 다양하니,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예컨대, 저비용 외국인 도우미로 육아를 담당하게 하고, 젊은이들의 소개팅을 주선하겠다는 방안들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솔루션들이 마치 ‘저출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요?’라는 질문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대답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인구 유출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울산시에서는 울산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다. 기업 유치를 하려면 기업인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저명한 기업인 흉상 조형물을 산 위에 설치해 울산의 새로운 자랑거리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울산을 청년들이 자긍심을 갖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런 뉴스를 접하자 문득 미국의 러쉬모어(Rushmore) 산이 생각났다. 또 중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1850년 작 ‘큰 바위 얼굴’도 떠올랐다. 먼저, 러시모어 산은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블랙힐스에 무려 14년(1927~1941년)에 걸쳐 만들어진 유명한 기념물인데, 네 명의 미국 대통령들 -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테오도어 루즈벨트, 아브라함 링컨 - 의 국가에 대한 공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반면, ‘큰 바위 얼굴’은 인공 조형물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사람 얼굴 모양 바위에 얽힌 이야기이다.

호손의 소설에서 어니스트라는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앞산 바위 언덕에 있는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마을에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고 자랐다. 어니스트는 그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품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그 마을 출신으로 성공한 사람들 - 갑부, 장군, 정치인, 시인 등 - 이 마을을 찾아왔으나, 내면의 훌륭함을 갖춘 위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어니스트가 나이가 들었을 때 바로 그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매일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며 성실하게 살던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로 그 마을이 기다리던 현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큰 바위 얼굴’ 이야기는 이상적인 인물의 덕목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마찬가지로, 지역에 대한 자부심은 산을 깎아 만든 거대한 인공 조형물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울산을 꿈꿀 수 있는 ‘울산의 어니스트’를 지원, 독려해야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기업인의 거대한 흉상으로 지역 인구 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제안은 마치 ‘지역의 인구 유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