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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의 경제읽기(2)]어려울 때 더 빛나는 울산경제와 기대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위험 요인에도 올해 163억달러 무역 흑자 달성 저력 전기차·이차전지 등 미래 신산업 육성 도시인프라·정주여건 개선 등을 통해 새롭게 재도약하는 위대한 울산 기대

2023-06-30     경상일보
▲ 이강원 한국은행 울산본부장

지난 6월초 35년만에 재개되어 70만여명이 다녀간 ‘울산공업축제’의 뜨거움과 다채로움을 보면서 울산시민들의 깊은 공동체 의식과 숨겨진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지역을 흔히 ‘산업수도’라고 자칭타칭으로 일컫고 있는데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한국이 글로벌 공업입국이 되기까지에는 바로 ‘태화강의 기적’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데에는 우리 산업역사를 잠시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한때 태화강은 ‘죽음의 강’으로 악명 높았고 울산시민들은 생산현장에서는 치열하게 일하고 생활공간에서는 산업공해로 고생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울산 공기가 어느 지역들에 비해서도 뒤처지지 않지만 말이다.

현재 한국경제는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고 성장률은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내외 안정성에 중요한 무역수지는 적자가 지속됨에 따라 이례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다.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과 정부예산 제약이 경제의 활력(agility)을 약화시킨 데다 여러 쇼어링 흐름(reshoring, nearshoring, friendshoring) 등으로 일컫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정이 우리 산업계에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압박당하고 있는 가운데 근본적인 구조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성장잠재력과 혁신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울산지역의 경제는 그나마 선전하고 있다는 데에는 고무적인 일이다.

울산지역 경제도 여전히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최근 이 지역 주요 기업들의 활약상에 힘입어 우리 경제의 완충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은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탑3에 오른 여세를 몰아 올해에도 친환경 전기차, 고부가가치 SUV 등을 필두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분기에는 국내 상장사 중에서 최고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조선산업의 경우에도 HD현대중공업이 3년치 일감을 확보해 총 10개 도크가 꽉찬 가운데 인도기일을 맞추기 위해 풀가동 중이다. 석유화학산업도 SK지오센트릭과 롯데케미칼 등이 글로벌 과잉공급 상황에서도 꾸준한 수출실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올해 1~5월 중 울산지역의 누적 수출액이 357억달러에 달하는 가운데 무역흑자액은 163억달러로 전국(-274억달러)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호조에 따른 생산 증대의 온기가 이 지역 아니 전국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러한 울산경제의 면모는 2010년대 중반 글로벌 수요 둔화로 조선업 등의 지역경제가 크게 후퇴했던 고통 이후에 이룩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만큼 지역 기업인들과 주민들의 수고와 노력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울산은 신라시대부터 왕도 경주의 관문으로서 국제 무역도시였다. 당시 중국인, 일본인은 물론 이슬람 상인까지 신라와 교역하기 위해 태화강과 그 지류인 동천강 수로를 통해 경주를 드나들었다. 우리가 잘 아는 처용의 외모가 눈이 깊고 코가 높다는 것은 이와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울산은 역사 이래로 국제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일본에게 개방한 교역항 3포 중 염포(鹽浦)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염포라는 지명은 소금이 많이 생산된다 하여 붙은 것으로 죽령 이남에서 울산소금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울산을 공업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을 추진하다가 패망으로 중단되었다. 넓은 평지가 형성된데다 도심을 관통하는 태화강의 풍부한 공업용수와 조수 간만차가 전국에서 가장 작은 항구로서의 입지적 장점이 작용했다. 요는 울산은 사람과 물자가 만나는 천혜의 항구로서 근대 공업화의 좋은 출발지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현재 수출입국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먼 과거의 얘기까지 끌어온 것은 요즘처럼 대내외적 불확실성과 위험요인들이 상존하는 시기에 울산의 역사적 가치와 이에 따른 책임과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울산이 공업화의 선두주자로서 누린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고통도 컸고 아쉬운 점도 많았다. 앞서 말한 근로자의 피땀과 공해 외에도 일만 하고 놀 게 없는 노잼도시의 대명사가 되었고 어느 곳에도 뒤처지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산업공단으로 가로막혀 웰빙문화가 제약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제조업보다는 산업의 다양화 및 소프트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루어 온 제조업의 성과는 소중한 것이고 또한 울산의 미래 먹거리 중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스마트조선과 친환경선박, 2차전지와 양극소재, 충전로봇 등은 현재 이 지역의 주력산업에서 나오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에 도시인프라, 주거여건 등 다소 아쉬운 점들을 보완해나간다면 울산의 도시경쟁력이 보다 향상될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을 방문했을 때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공장 외벽에 새겨진 것을 보았다. 故정주영 회장의 말이다. 이는 고인의 행적으로 비추어 볼 때 이기심이나 자만심의 발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막중한 책임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다하겠다는 신념과 약속의 표출일 것이다. 중국이 제조업 2025 전략(Made in China 2025)으로 G2 반열에 오르고 미국이 IRA법과 반도체법을 통해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복원하려는 전략을 펴는 것을 보면 국력과 국민 삶에 있어 제조업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온 시민과 울산시가 하나가 되어 개막식 첫날 우중에도 불구하고 뜨거웠던 울산공업축제의 열기가 우리나라 수출의 선봉에 선 울산경제의 자양분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이강원 한국은행 울산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