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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의 철학산책(49)]생각하는 갈대

2023-07-03     경상일보
▲ 김남호 철학박사

17세기 프랑스가 낳은 천재 파스칼은 생전에 강렬한 종교 체험을 했다. 그리고 수학자와 과학자의 모습에 기독교 변증가의 모습이 더해지게 된다. 기독교 지성인으로서 자기 생각을 담아 정리한 책이 바로 <팡세>이다. 이 유명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 책은 내용이 어렵지 않고, 유명한 구절이 많아 꼭 한 번 일독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팡세>에는 그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한 구절이 나온다. 우주는 거대하고 힘이 세어서 단 한 방울의 물방울과 같은 힘만으로도 전 인류를 없앨 수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이 예상하는 지구 멸망 시나리오를 보면, 파스칼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거대 화산 폭발, 대규모 태양 폭발, 소행성 충돌, 치사율 높은 공기 전염 바이러스의 확산 등등. 인간은 참으로 우주 속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자기가 힘이 세다는 걸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약하고 보잘것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자의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이러저러함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우주 차원에서 인간은 갈대처럼 별 볼 일 없지만, 동시에 특유의 자의식 때문에 독특하다.

자기의식 때문에 인간은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프랑클이 나치 수용소에서 목격했듯, 돼지가 되기도 하고, 천사가 되고 한다. 자기 안에 이기적인 욕망이 있음을 알면서 범죄를 저질러서 악마이며, 자기 안에 사사로운 욕구를 억누르고 의도적으로 선한 선택을 해서 천사이다.

나는 악마로 살고 있느냐, 아니면 천사로 살고 있느냐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그 두 모습은 섞여 있을 것이다. 다만 가능한 한 더 선한 삶을 살고자 노력할 뿐이다. 인간이 죽기 전에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했거나 더 좋은 차를 타지 못한 걸로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더 사랑하지 못해서, 용서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선한 삶을 살아보자. 죽기 전에 후회할 일이 적은 삶이 곧 인간으로 성공한 삶이 아닐까.

김남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