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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칼럼]꿀잼도시 힐링도시

울산도 이제 천천히, 그리고 여유있게 공동체 가치와 지역 정체성을 재인식 꿀잼과 힐링의 공존, 균형있는 도시로

2023-07-17     이재명 기자
▲ 이재명 논설위원

서부 유럽 한 바닷가 보트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어부가 있었다. 휴가를 온 한 사업가가 사진을 찍다가 어부에게 “날씨가 좋은데 왜 고기를 잡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부는 “필요한 만큼 이미 충분히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업가는 답답해하며 “당신이 두 번, 세 번, 아니 그 이상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며 “나중에는 어선도 사고, 냉동 창고, 훈제생선 창고, 공장, 헬리콥터까지 사게 될 것”이라고 열을 올렸다. 어부는 “그런 다음은요?”라고 되물었다. 사업가는 “그런 다음 이 보트에 앉아 햇살과 풍경을 즐기면 된다”고 했다. 어부가 답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잖소.”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이 1972년 쓴 <노동윤리 몰락에 관한 일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일화는 짧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과 삶의 의미,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등을 돌아보게 한다.

아등바등 살아온 대한민국의 지난 세기는 그야말로 오로지 자신과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삶을 소진시켰던 시대였다. 대한민국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은 더욱 그랬다. 1962년 1월27일 우리나라 최초의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울산은 당시 수출액이 26만 달러에 불과했으나 불과 49년만인 2011년에는 1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여 죽고, 폭발사고로 죽고, 가스를 마셔 죽었다.

그런데 최근 젊은층들의 사고방식은 베이비부머들의 그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인리히 뵐의 일화처럼 대부분 청년들은 하루 벌어 하루 쓰는 것이 일상화됐다. 필요한만큼의 고기를 잡았으니 이제는 여유를 부리며 낮잠을 자거나 재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최근 울산의 화두 중 하나는 ‘꿀잼 도시’다. 꿀잼은 ‘꿀재미’의 준말이다. 그 반대는 ‘노잼’으로 ‘No+재미’의 준말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해 취임 일성으로 ‘꿀잼 도시 울산’을 천명했다. 김 시장은 “K팝사관학교 등 청년들이 놀 공간을 만들어 ‘노잼도시’에서 ‘꿀잼도시’로의 전환을 가속하겠다” 밝혔다. 청년들이 와야 도시가 생기발랄해지고 인구가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러나 최근 ‘꿀잼’ 정책에 밀려 ‘힐링’을 원하는 중장년층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수년전 울주군이 영남알프스 홍류폭포 아래쪽에 ‘호랑이 생태원’을 만들어 관광자원하겠다는 반생태적인 정책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가정원에서 남산까지 1㎞ 거리의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전망타워를 건립하겠다는 발상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자칫 힐링공간이어야 할 남산과 국가정원이 카페, 음식점, 익스트림 시설 등이 즐비한 놀이공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꿀잼’과 ‘힐링’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꿀잼은 ‘재미’라는 요소를 강조하지만 힐링은 ‘휴식’과 ‘치유’의 뉘앙스가 강하다. 지난 2002년 세계적으로 확산된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시장이 세계를 향해 ‘느리게 살자’고 호소하면서 시작됐다. 울산도 이제 천천히, 그리고 여유있게, 그리고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와 지역 정체성을 재인식할 때가 됐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일에 목숨을 걸어놓고 살아왔다. 안 먹고 안 입고 저축했다. 반면 젊은층들은 하루 벌어 하루 소비한다. ‘꿀잼’이 철철 넘치는 축제와 먹거리가 그득하다. 힘들었던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울산 민선8기의 슬로건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위해 ‘꿀잼’과 ‘힐링’이 공존하는 균형있는 정책을 펼치자는 것이다. 최근 삶에 지친 중장년층들이 힐링장소를 여기저기 찾지만 꿀잼시설이 계속 잠식해 들어오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일에 허리가 휜 중장년층들도 이제 하인리히 뵐의 어부처럼 하루치만큼만 고기를 잡고 나머지 시간은 보트에서 낮잠을 자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