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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43)]맨발로 걷는 사람들

자연의 기운과 질감 온몸으로 느껴 육체적 건강과 숙면 얻는 것은 물론 정신적 평화와 새로운 자유 경험도

2023-08-02     경상일보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문수산 등산길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비가 내려서 땅이 젖은 날에도 맨발로 걷는다. 맨살로 땅을 느끼고 싶은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바닷가 모래밭에서는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게 된다.

부드러운 황톳길에서 맨발로 걷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도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에 미끄러운 등산길을 신발의 도움 없이 걷는 일은 그렇게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한발 한발 정신을 집중하고 나아가는 모습은 가벼운 등산이 아니라 수행자의 순례 같다. 무엇이 이들을 맨발로 나서게 했을까. 단순한 지압 효과를 얻기 위해서 젖은 산길을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맨발 걷기를 몸소 실천하는 것을 넘어 주위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사람의 몸과 땅이 신발이라는 매개물 없이 직접 닿는 효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걷기 효과를 직접 체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방행정 수장으로서의 경륜과 국가 경영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정치인이라 가볍게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승용차 뒷좌석에 익숙한 정치인이 맨발 걷기의 전도사로 나선 까닭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고 걸어보아야 할 것 같다.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걷기를 실천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특별한 준비 없이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쉬운 운동이기 때문이다. 또 동행이 없어도 가능한 운동이라는 장점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노년에 어울리는 운동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 소재가 걷기에 관한 것이다. 그들에게 하루 2만보나 3만보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은 숨길 수 없는 자랑거리가 된다.

걷는 즐거움을 양적인 거리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두꺼운 신발은 필수적인 장비이다. 땅의 굴곡을 발바닥이 느끼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발 걷기는 거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눈이 목표하는 곳도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에 있다. 땅의 굴곡과 질감을 몸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걷는다. 발을 보호하는 두꺼운 신발을 벗어 던진 이들에게 땅은 자연의 기운으로 보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맨발로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걷기에 좋은 길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도 한다. 가까운 황방산 황톳길은 맨발 마니아들이 멀리서도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이곳을 수시로 찾아간다는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한번 가 보라고 권유했다. 황방산 황톳길을 걷고 온 날은 다른 날과 달리 깊은 수면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참으로 유익한 정보임이 틀림없다. 노년에 이르면 편안한 밤을 보내는 일이 범사가 아니다. 두 번 깨어나고 세 번 잠들어야 아침에 이른다는 말은 흔히 듣는 이야기다. 밤을 건너는 긴 여로를 겪어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들에게 숙면은 선물 같은 것이다.

걷는 일이 이동의 수단이기보다는 육체의 건강을 얻기 위한 운동이 되었다.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평화를 얻으려고 걷는 사람도 있다. 특히 혼자서 걷는 일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철학자 루소는 보름간 혼자 걸어서 여행한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에게 혼자 걷기는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는 시간이자 정신적 충만감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맨발로 걷는 일도 자연의 기운과 질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은 인간의 행동이다. 자신의 발아래 땅을 부드러운 맨살로 밟아나가는 일은 자연 앞에 자신을 낮추는 가장 원시적이고 소박한 인간의 몸짓임이 분명하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