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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48)]불확실성의 시대, 변혁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위험사회속 포용력 갖춘 지도자 필요 강력한 지시 내려 통솔하기보다는 구성원과 소통하고 상호작용 중시를

2023-08-09     경상일보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우리는 여러모로 위험과 불확실성의 현대 산업사회에 살고 있다. 21세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한국도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 산업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쟁취했지만, 기술적 진보 때문에 새로운 불안이 증대되는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막대한 생산력을 제공했지만, 그로 인해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 위험 상황속에서 정작 개인의 삶은 불안하고 위험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는 1977년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 The Age of Uncertainty>에서 예전처럼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는 현대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표현은 단순히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으로 확장돼 전 세계의 화두가 되었다.

21세기에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로 인한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 전 세계인이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가 퇴조하고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세계는 특히 우리가 사는 한국은 불안불안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브렉시트와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미-중 무역 분쟁 등으로 세계화는 주춤거리다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으로 각종 교류가 중단되면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가격은 폭등했고 자국중심주의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국이 과거 심각한 역사 문제가 있다고 해 일본과 교역을 단절하지 않듯이, 안보동맹이라는 차원에서 미국과 가까이 지내야 되지만 경제면에서 우리가 중국과 대립하며 척을 지고 살 필요는 없다. 이제 한국이 좀 잘살게 되었다고 자만에 빠져 이 나라는 이래서 끊고 저 사람은 저래서 멀리하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꼭 필요할 때 곤경에 처한다.

미국이 안보면에서 중요하듯이 중국도 경제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중국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듯 보이지만, 서로 교역을 꾸준히 유지하며 외교채널도 상시 가동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영토분쟁과 안보문제로 사사건건 부딪치지만 양국의 경제협력 관계는 탄탄하다. 2019년 이후 단절된 양국 안보 대화를 위해 금년 초 ‘핫라인’을 구축했다. 한국의 모든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한 면만 바라보는 지도자는 국가와 기업과 가정의 미래에 해를 끼칠 수 있다.

혼돈과 대변혁의 시대에 역량 있고 포용력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호탕한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게 필요했다면 지금에는 변혁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와 조직에서 지도력(leadership)은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 행동을 하도록 동기부여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관리자의 능력을 말하며, 공식적으로 직위에 부여된 권한 중심의 직권력(headship)과는 명확히 다르다.

헤드 또는 보스라는 전통적 지도자가 직위에 따른 막강한 권한으로 부하들을 통솔하고 강력하게 지시 명령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 부하들이 더 전문적이고 능력이 출중한 시대이다. “나 때는 말이야”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부하 직원을 닦달하면 그 조직은 망한다. 리더는 부하의 자발적 동기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하고 부하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해야 한다. 리더는 말을 줄이고 부하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소통은 경청으로부터 시작된다. 최고 책임자가 나서야만 일이 해결되는 것은 후진국형 업무 처리방식이다. 구성원들이 소속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껏 일하도록 해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가 할 일이다. 혹시 정부 부처에서 소속 조직에서 가정에서 나는 어떠한 리더인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