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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4)]성스러운 건축의 기원 : 카르낙 신전

고대이집트 수도 테베의 대표 사원 3500년 연륜 서양 고전건축의 기원 탑문 지나면 수많은 스핑크스 도열 내부 들어갈수록 위압적이고 장중 ‘신성한 배’ 앞머리 신체 삼아 봉안

2023-08-11     경상일보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기원전 2000년경부터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번영했던 테베(Thebe)는 오늘날 룩소르 근처에 소재했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나일강의 서쪽과 동쪽을 각기 다른 세상으로 인식하면서 도시를 건설했다. 나일강의 서안이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즉 저승세계라면, 동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승의 세계였다. 이에 무덤은 나일강 서안에, 도시는 나일강 동안에 조성됐다. 하지만 도시 유적들의 대부분은 소멸되어 사라졌고, 신전 건축만이 남아 위대했던 이집트 문명의 역사와 건축을 증거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자연의 힘을 상징하는 다양한 신과 지역의 수호신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마다 지역의 토착 신을 모시는 신전을 건설했고, 이는 도시를 보호, 발전시키기 위해 신에게 간구하는 의식과 기원의 장소였다. 그들의 신앙체계 안에서 파라오는 태양신 라(La)의 아들로 인식됐다. 그는 신으로부터 부여된 절대적 권위로 통치하는 신정(theocracy)사회의 군주였다. 이에 신전은 파라오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파라오의 권력이 막강해질수록 더 웅장하고 화려한 신전을 짓는데 몰두하기 마련이었다.

▲ 이집트 고대 도시 테베의 대표 사원 카르낙 신전.

카르낙 사원은 고대 도시 테베의 대표 사원이다. 테베의 삼신(Theben Triad)이라는 주신 아문라(Amun-La), 그의 아내 무트(Mut), 그의 아들 콘수(Khonsu)를 모시는 사당을 두었다. 사원을 짓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000년 경이니, 단군 할아버지 시대에 해당한다. 후대에 지속적인 증·개축이 이루어졌지만 많은 부분이 3500년 이상의 연륜을 갖는다. 서양 고전건축의 기원을 볼 수 있는 경이로운 유적이다.

사원으로 향하는 길 양편에는 조각상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자세는 사자처럼 보이지만 머리는 숫양의 모습이다. 길을 지키는 스핑크스들이다. 원래 이 길은 카르낙 사원에서부터 룩소르 사원까지 이어지는 스핑크스 대로(Avenue of Sphinxes)였다고 한다. 전체 길이가 2.6km에 달했지만, 지금은 성문 앞에만 100여 미터 남짓 남아있다. 강한 직선 축으로 동선을 유도함으로써 신성한 영역으로 향하는 엄숙한 준비 자세를 갖추게 한다.

사원은 탑문(Pylon)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다. 탑문은 이집트 사원 건축의 필수적 요소로서 사원을 수호하는 성벽과 성문에 해당한다. 탑문의 벽체는 앞에서 보면 아래 폭이 넓고 윗폭이 좁은 사다리꼴이며, 옆에서 보면 밑이 두껍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모습이다. 착시 효과 때문에 실제보다 더 높아 보인다. 탑문 앞에는 거대한 신상이나 오벨리스크를 세우기 마련이나, 이 모습은 부축의 파이런에서나 볼 수 있다. 탑문의 외벽에 세로로 길게 파낸 홈들이 외벽의 중량감과 장중함을 강화해 준다.

협곡같이 좁고 높은 파일런의 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넓은 마당이 전개된다. 앞마당에 해당하는 전정(Great forecourt)이다. 굵은 기둥들이 열을 지어 주랑(colonade)을 형성하며 마당을 에워싼다. 바깥쪽으로는 견고한 석조벽체로 둘러싸고, 안쪽으로는 수많은 스핑크스가 안마당을 호위한다. 마당 중앙에 다시 높고 늘씬한 기둥들이 제 2탑문으로 향하는 길을 만든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위압적이고 장중한 공간을 만나게 하는 연출이다.

제 2탑문을 통과하면 134개의 기둥이 빽빽이 서있는 방으로 들어선다. 이른바 다주실(多柱室; Hypostyle)이다. 천정을 받치는 구조역학적 기능만이라면 이렇게 두껍고 많은 기둥을 촘촘하게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오벨리스크가 그러하듯 기둥도 지상 세계와 하늘 세계를 연결하는 신성한 상징물이다. 기둥 표면에는 선각으로 그린 부조 벽화로 장식되곤 한다. 기둥이 밀집된 다주실, 바로 성스러운 나무와 숲의 상징이다.

위치에 따라 기둥의 모양과 높이가 다르다. 중앙에는 높고 늘씬한 기둥, 양옆에는 짜리몽땅한 기둥을 배치해 공간을 구별했다. 마당에서 시작된 중앙통로가 다주실 안으로 연속되는 모습이다. 기둥 머리의 모습도 서로 다르다. 중앙 기둥은 머리 부분에서 날렵한 원반형이지만, 양쪽 공간의 짧은 기둥은 단순하고 투박한 사각형 주두를 얹었다. 천정은 기둥머리를 연결하는 보(lintel)를 가로지르고 천정 널을 덮었다. 석재로 가구식 구조를 만드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역학적으로 합리적인 방식은 아니다. 당연히 과시용 권위건축에서나 사용됐다. 가구식 석조 건축의 기술과 미학은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져 서구 권위건축의 고전 형식을 발전시켰다.

다주실 뒤로 신체를 봉안하는 성소를 배치했다. 성소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편으로 또 다른 탑문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주축과 직교하는 부축이다. 파라오마다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자 탑문을 세우다 보니 새로운 축이 형성된 것이다. 여러 겹의 문은 공간을 구분하고, 공간의 서열과 심도를 나타내는 건축 방법이다. 이를테면 구중궁궐의 개념이다. 이렇게 강한 직선 축과 다중의 겹을 두는 기법은 여러 문화권에서 권위건축의 배치개념으로 자주 등장한다.

부축의 탑문과 신전 사이에는 장변이 200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의 인공연못을 축조했다. 이른바 ‘성스러운 호수(Sacred Lake)’로 불리는 연못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바다 ‘눈(Noun)’을 상징한다. 물론 사제들이 정화의식을 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성소에 들어서기 전 몸을 씻는 의식의 기원으로서 이후 여러 종교건축에서 나타난다.

성소 구역은 더욱 좁고, 어둡고, 폐쇄적이며, 복잡한 공간구성을 갖는다. 32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다주실의 현관을 지나면 중정이 나타난다. 구역의 후면에는 수 많은 방들이 미로처럼 얽혀진 성소를 배치했다. 그 중심에 자리한 아문 사당 안에는 신성한 배(Sacred Barque)가 봉안되어 있다. 신들이 타고 다니는 배로서 앞머리를 신의 상징으로 장식해 신체(神體)로 삼았다. 배에는 긴 막대기를 끼워 가마처럼 어깨에 메고 운반할 수 있었다. 오페트 축제때에 신성한 배를 메고 룩소르 사원까지 행진하면서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성상을 모시고 도시를 행진하는 의식은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