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이재명 칼럼]이단옆차기, 기분상해죄(氣分傷害罪), 그리고 교권보호

교권붕괴로 교원 극단적 선택 잇따라 교사-학생간 신뢰·사랑·존경심 바탕 다시 한번 근본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2023-08-21     이재명 기자
▲ 이재명 논설위원

고리타분한 이야기 같지만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1970년대에는 그야말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군주와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가 나라의 신조였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네”라는 스승의 노래는 부르고 불러도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맹세 같은 것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이라도 오면 대부분 아이들은 부끄러워 부엌이나 뒤란으로 숨곤 했다. 선생님이 너무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이제는 학교에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니 경천동지할 일이다. 아직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특정 학부모의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공립 초·중·고 교원 100명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이 중에서 57명은 초등교사였다. 대부분 사망 원인이 ‘원인불명’으로 분류됐는데, 서이초 교사 사건 역시 원인불명으로 처리될까 우려스럽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외줄타기처럼 양립하기가 어렵다. 평형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아우성이 터져나온다. 특히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전장에 내보낸 사령관마냥 벌떼공격을 감행한다. 이 와중에 교사들 사이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죄목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내 아이 기분 상해죄(氣分 傷害罪)’. 이 상해죄 때문에 많은 교사들이 학교를 떠났고, 상당수 교사들은 아동학대죄로 몇 날 며칠 동안 조사를 받고 있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건달입니다” 지난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명대사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0대다. 영화에서 교사는 대뜸 손목시계를 풀고 주인공을 흠씬 두들겨 팼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라면 당장 감옥으로 직행할 일이다. 그 당시에는 ‘학생인권’이라는 개념이 싹조차 내밀지 않았던 시대였다. 선생님 말씀에 토씨를 달았다가는 바로 이단 옆차기가 날아왔다.

‘교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서 학생들이 인권 운운하면서 하도 제멋대로 행동해서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기는 학생인권과 교권이 교차하는 변곡점이었다. 이단 옆차기를 했던 교사는 없어지고 대신 학생이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으로 여교사를 촬영하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2001년 개봉한 영화 ‘두사부일체’(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는 2000년대 학교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준 영화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간의 미묘한 갈등이 장면마다 디테일하게 묘사돼 있다.

지난 17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이 고시됐다. 이 고시안에 의하면 교사는 교육을 방해하는 학생을 교실 내 다른 좌석, 교실 내 지정된 위치, 교실 밖 지정된 장소 등으로 분리할 수 있다. 또 수업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에게 주의를 줄 수 있고, 이를 무시할 경우 물품을 분리 보관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고시로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말을 안 들었으면 이런 조항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교사와 학생간에는 신뢰, 사랑, 존경, 양심 등이 밑바닥에 깔리지 않으면 육법전서가 다 필요없다. 소나 말의 머리에 얽어매는 줄을 굴레라고 하는데 굴레에 갇히면 소든 말이든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학생이나 교사도 마찬가지다. 법이라는 굴레가 씌워지면 평생 그 테두리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땅에서는 창의, 자유, 꿈, 희망 같은 새싹은 돋아날 수 없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네…. 다시 한번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너무 늦었을까.

이재명 논설위원 jmlee@ksilbo.aykt6.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