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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5)]아부 심벨(Abu Simbel), 정복의 증표

아스완에서 수단 국경에 이르는 지역 람세스 2세가 정복, 이집트 속국 만들어 자신과 왕비 신격으로 봉안한 신전 세워 입구엔 22m에 이르는 람세스2세 좌상 바위가 신상으로 변한듯한 판타지 연출

2023-09-15     경상일보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국경도시 아스완에 닿는다.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나일강이 호수처럼 넓고 위풍당당하다. 대형 크루즈가 드나들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고, 마리나에는 고급 요트들이 즐비하다. 돛을 활짝 편 펠루카(전통 돛단배)들도 떠다니지만 이국적 풍경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중해의 어떤 항구풍경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나일 살인사건’이 시작되는 무대로서도 손색이 없다.

갈수기가 심한 이 지역에서 어떻게 저만큼 풍성한 강물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풍성한 강물의 실체는 도시 외곽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일강을 막아 세운 거대한 댐, 바로 아스완 하이 댐이다. 길이 3.8㎞에 이르는 거대한 댐은 바다같이 넓은 저수지를 만들었다. 깊고 푸른 수면이 수평선처럼 아스라이 멀어진다. 이 댐은 가뭄과 범람이 심한 나일강의 치수를 위해 1960년대에 건설된 것이다. 갈수기에 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조절하며, 전기까지 생산할 수 있으니 이집트 정부로서는 국가부흥이 걸린 대사업이었다. 하지만 댐 건설로 인해 많은 유적과 마을이 수몰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누비아 지역에 있던 많은 유적들이 수몰 위기에 처하게 되자 국제사회가 나서기 시작했다. 특정한 사회의 문화유산이 그 당해국 차원을 넘어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유네스코가 주도한 이 캠페인에 60여 개국이 동참했고,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고지대로 이전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날 누비아 지역에서 고대 유적을 원형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국제적 협력의 덕분이다.

아직 여명이 시작되기도 전 아부 심벨(Abu Simbel)을 향해 버스가 출발한다. 황량한 사막지대를 관통하는 길이다. 사막의 밤 풍경은 그런대로 낭만적이다. 아직 그 열기와 위험과 갈증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슴프레 여명이 시작되면서 버스들은 휴게소를 향해 모여든다. 사막의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광대무변한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출은 소름이 돋을 만한 장관이다. 강력한 햇발이 사방으로 퍼지며 시시각각 세상의 형과 색을 바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기에서 태양신 라(La)의 장엄한 생명력을 체감했을 것이다.

▲ 이집트 람세스 2세가 누비아를 정복한 후 세운 동굴 신전 아부 심벨

이곳은 아스완에서 수단 국경에 이르는 땅, 고대에는 누비아라고 불렸다. 비록 대부분이 사막이지만 비옥한 나일강이 상류로 이어지고, 희귀 광물과 상아, 고급 목재 등 천연자원이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영토 확장을 노리던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터, 기원전 1550년경 이래 누비아는 이집트의 침공을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00년경 누비아를 완전히 이집트의 속국으로 만든 정복 군주다. 그는 자신이 성취했던 정복 전쟁의 승리를 여러 곳에 기념물로 남겨놓았다. 그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유적이 바로 동굴 신전 아부 심벨이다. 자신과 왕비를 신격으로 봉안한 자신의 신전을 세운 것이다. 람세스는 이 땅을 정복한 사실과 지배의 권위를 신의 모습으로 과시하려 했던 것 같다.

신전은 나일강을 바라보는 야트막한 황토빛 사암 언덕 두 개를 선택해 대지로 삼았다. 이중 큰 언덕에는 람세스 2세의 신전인 대신전을 두었고, 작은 언덕에는 왕비를 위한 소신전을 배치했다. 완전히 평행한 것은 아니나 모두 나일강을 바라보도록 배치했다. 대신전의 정면은 예고도 없이 충격적으로 출현한다. 높이 22m에 이르는 거대한 좌상 4기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모두 람세스 2세의 좌상들이다. 마치 바위가 갑자기 신상으로 변하듯 신비로운 판타지를 연출한다. 그 스케일에서 파라오의 초월적, 위압적 모습이 드러난다. 원래는 채색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보다 더욱 화려하고 장엄했을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실리카처럼 기둥이 배열된 중앙홀이 나타난다. 다른 지상 신전에 비해 기둥이 높거나, 두껍거나, 조밀하게 배치되지는 않았지만 신비로움을 연출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기둥에는 오시리스 모습을 갖춘 람세스 2세의 입상이 새겨져 있다.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스라한 빛이 오시리스의 실루엣을 슬며시 드러내면서 신비감과 두려움을 고조시킨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천정은 낮아지고 좁아진다. 점점 어두운 곳으로 유도하면서 긴장감과 외경심을 점증시킨다. 홀 주변의 방에는 벽과 천정에 파라오의 영웅적 서사를 그려 그 업적을 찬양했다. 지성소에는 다른 신상과 함께 람세스도 봉안했다. 파라오가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대신전에서 북쪽으로 약 90m 거리에 왕비를 위한 소신전이 자리한다. 입구에는 왕과 왕비(Nefertari)의 상 6기를 세웠다. 대신전처럼 좌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세로로 긴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부조와 같은 입상을 만들어 넣었다. 과시적이라기보다 아담하고 장식적이다. 스케일이나 장식에서 대신전과 차별화해 격을 낮추려는 의도가 보인다.

내부공간의 구성은 대신전과 비슷하다. 중앙 홀 기둥에는 여신상을 돋을 새김으로 새겼다. 사랑과 출산의 여신으로 알려진 하트호르(Harthor) 여신상이다. 신비로운 분위기보다는 다소 희화적인 디자인이 사용되었다. 벽화 중에는 람세스가 꽃을 바치거나 향을 피우는 장면도 보인다. 그러나 소신전을 지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죽어서도 일부종사하라는 뜻인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의 신전군은 본래의 위치에서 뒤로 약 200m, 위로 약 65m 정도 높은 곳으로 이동해 재조립된 것이다. 원래의 유적을 20t 규격으로 절단해 위에서부터 해체한 후, 뒤로 이동해 바닥에서부터 쌓아 복원했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초창 당시의 내부공간과 석상들의 모습이 원형에 가까운 수준으로 복원될 수 있었다. 이 신비로운 유산을 만들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재능과 노력도 경이롭지만, 이것을 토막내어 재구축한 현대인들의 기술과 노력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