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카지노

[신면주 칼럼]국민 노릇

진영 논리에 함몰된 대의 민주주의 정의가 왜곡되면 국가 안위마저 위태 이제는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할때

2023-09-19     경상일보
▲ 신면주 변호사

임진왜란 두해 전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교토에 다녀온 서인 황윤길은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동인 김성일은 ‘그러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상반된 보고를 한다. 동인인 유성룡이 제자인 김성일을 따로 불러 이를 추궁하니 ‘나도 어찌 왜적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상대가 너무 격하게 나오니 온 나라가 놀랄까 봐 그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인 김성일이 서인 황윤길의 보고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참혹한 왜란을 겪어야 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즘 말로 하면 국가의 안위보다 당파의 진영논리를 따르는 바람에 생긴 참극이다.

진영논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임진왜란 중에 제2의 조정인 분조를 구성하고 의병을 규합해 왜군과 맞섰던 광해군은 집권하자, 전쟁의 참혹상을 몸소 겪은 바라 비교적 당파 색이 덜하고 정의감이 있는 북인들을 등용하고, 후금과 명 사이에서 침략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자주 중립 노선을 취했다. 이에 권력에 밀려있던 서인들을 중심으로 인목대비의 폐비를 빌미로 인조반정을 일으켰고, 지금의 혁명 공약쯤에 해당하는 반정교서의 절반에 가까운 내용을 ‘친명배금(親明排金)’을 천명하는데 할애했다. 반정을 주도한 인물들도 당시 국제정세의 대세가 후금으로 기울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상대당과의 차별을 뚜렷이 해 반정의 명분을 확보하고자 대책 없는 진영논리를 취하고 만다. 이후 병자호란으로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인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맞이한다.

왕조시대나 자유민주주의 시대를 불문하고 권력 쟁취의 속성상 다소의 진영논리를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국가의 중요 사안에 관해 진영의 논리의 간극이 너무 크거나, 이를 줄여나가 공감대를 형성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등대 불빛을 잃어버린 밤 배가 되어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됨이 역사의 교훈이다.

현대 민주주의 철학은 지성을 기반으로 합리적인 토론과 결과에 대한 승복과 관용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의 주요 작용이 정치 세력에 오염돼 파당적인 진영논리를 대변하고,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작용과 민주주의 요체인 언론마저 독립성과 중립성을 포기하고 진영논리에 가세한다는 의혹을 받기 시작하면 정의가 왜곡돼 국가의 안위는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를 놓고 한편에서는 ‘핵 테러’라 하고 한 편에서는 ‘당장 마셔도 좋은 물’이라 한다. 박정희는 잔혹한 독재자와 경제를 일으킨 성군의 양극단에서만 존재한다. 위대한 독립군과 공산주의자의 양극단에 서 있기는 홍범도 장군도 마찬가지다. 야당 대표의 장기간 단식사태 또한 민주주의 붕괴를 막으려는 결단과 개인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가짜 단식’이라는 양 절벽에서 마주 보고 있다. 어디에도 지성에 기반한 합리적인 문제 해결의 메시지는 없다. 진영의 입장에 따라 유리한 부분은 지나치게 뻥튀기 하고, 불리한 부분은 왜곡하거나 조작한다. 생업에 바쁜 국민을 대신해 고액의 연봉과 특혜를 받고 국사를 맡은 국회의원들은 당파적 이익을 대변하기에 급급해 대의 민주주의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진실만을 알려 비판과 감시를 생명으로 해야 하는 언론마저 정치진영에 가세해 급기야는 가짜 뉴스 생산에 손을 대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

믿고 비빌 언덕이 없는 국민은 이제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직접 나선다는 것이 광화문 거리에 촛불을 들자는 뜻은 아니다. 지역색 때문에 특정 정당을 평생 지지한 것은 아닌지 고민도 해보고, 정치 중립적인 시민단체 활동에도 좀 참여하고,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정치 유튜브는 좀 내려놓고, 술자리나 카톡방에서 정치 이야기 금기시 말고 느긋하게 반대 입장도 들어보고, 혹 자신이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해보고, 상식 밖의 언행을 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에 대해서는 체면불구 ‘댓글 폭탄’이나 ‘전화 수류탄’도 좀 날려 주는 등 생활 속의 저항적 권리를 꾸준히 확산해 국민이 개·돼지가 아님을 각인시켜나가야 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국민이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우리 정부로서는 다행이다’라며 이성적인 독일 국민을 나치즘으로 몰고 갔다. 온전한 정신으로 국민 노릇 하기가 만만하지 않은 세태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