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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의 문화모퉁이(5)]수학여행의 추억

악성민원에 교사 안타까운 죽음 잇따라 내가 존중받기 위해 상대방에 위압행사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교권마저 붕괴

2023-09-20     경상일보
▲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고등학교 때 갔던 수학여행을 돌아본다. 교실과 집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밤을 새우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평소 어렵고 무서웠던 선생님들을 놀려먹는 재미가 몇십 년이 지나도 남는 추억이다. 수학여행 중 열린 장기 자랑 시간에는 재능있는 학생들의 노래, 춤, 연극 등 많은 장르의 연행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주임 선생님을 우스꽝스러운 등장인물로 만들어 흉내 내는 패러디극이었다. 그러한 패러디 코믹 연극의 타깃은 거의 항상 체육과목을 담당했던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괴짜 수학 선생님 등이었다. 워낙 엄하고 진지했던 선생님들이라 평소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던 희화화는 수학여행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허용된 것이었으며, 웃음거리가 된 선생님들도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가끔은 모욕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게 만든 아슬아슬한 패러디는 보는 이로 해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이처럼 놀이라는 명목으로 행한 일탈을 통해 기존의 위계 구조나 권력관계가 전도되는 과도기적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을 소개한 영국의 인류학자 빅터 터너에 의하면 이 상황에서는 기존의 신분 질서의 전복을 시도하며 그 순간만은 참여자들이 평등, 자유, 그리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대학이나 군대 조직의 엄격한 위계 구조를 역전하는 ‘야자타임’, 그리고 조선시대 임금님이나 사또 나리를 희화화하던 마당극과 같이 평소 감히 하지 못한 행동이 허용되는 순간이 바로 커뮤니타스의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여행 때 이렇게 자유로운 상상력이 꽃피는 이 순간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대학입시니 기말고사니 다 잊게 되고 평소 경쟁하던 학생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선생님을 비웃는 데서 오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카타르시스도 사라졌다. 다만 억울한 아이와 부모들의 고소와 고발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권력자에 대한 저항이나 위계 구조의 전복의 의도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응당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민원을 제기하는 형태다. 교사는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도록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람이므로, 세금으로 공교육에 대한 비용을 내는 학부모들은 공정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의 모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을 시작으로 이후 많은 학교에서 교사가 악성 민원에 좌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학생의 인권 대 교권의 대립으로 몰고 가거나, 일부 누리꾼들은 교사를 죽음으로 이끈 가해자 신상을 폭로하는 등, 절망, 혐오, 그리고 분노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사실 최근의 일은 단순히 교육계만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끊이지 않는 ‘갑질’의 한 장면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요즘 한국인들은 내가 존중받고 대접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위압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내 아이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교사의 무릎을 꿇리고자 하는 행위의 저변에는 지금 여기서 누가 갑인가 하는 것을 따져보자는 심리가 있다. 이제 (일부) 학부모들이 전도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는 유일한 길은 ‘갑질’을 통한 것임을 부모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약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고안된 인권 보호 장치가 어쩌다 보니 법을 활용할 수 있는 ‘약자 코스프레’ 강자들의 갑질을 허용하는 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과연 성장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교사에게 교육을 맡기지 않고,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사를 자처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해 삶의 주인이 될 기회를 잃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자유와 상상력이 꽃피는 순간들이 공중에 분해되어 버렸다. 이것이 계속되는 이상,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불행해지는 일상만 지속될 것이다.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