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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多事多感(9)]꽃 하나를 제대로 아는 즐거움

산길·들길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꽃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가져다줘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즐거움과 같아

2023-09-27     경상일보
▲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

지난 7월 말쯤, 저는 등단 40년을 맞아 14번째 개인 시집을 펴냈습니다. ‘혀꽃의 사랑법’이란 시집입니다. 공적인 지면에 제 시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목으로 삼은 ‘혀꽃’이란 꽃 이름에서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혀꽃’을 시나 시집 제목에 쓴 것은 처음일 거라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습니다. 그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저는 혀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혀꽃은 혀의 모습을 닮았다는 ‘설상화’(舌狀花)를 말합니다. 둥근 ‘관상화’(管狀花)로 벌, 나비 등 벌레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꽃이 가짜 꽃인 화려한 색의 혀를 답니다. 이 얼마나 재미난 이름입니까. 꽃이 혀를 달고 벌레들을 유혹하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건 참으로 대단한 꽃의 일이며, 꽃의 진화가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는 식물인 꽃의 생존법입니다. 평소 꽃에 대해 시적 관심이 많은 저는 이 꽃의 생존에 대해 한 편의 은유로 시를 썼습니다. 혀꽃은 과학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육감적인 직유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혀꽃은 꽃을 분류하는 방법입니다. 설상화라고도 합니다. ‘윗부분은 화관의 일부가 신장하여 혀 모양이 되고 일부분이 통처럼 되어 있다. 국화나 민들레 등이 설상화로 되었다.’라고 두산백과는 적고 있습니다.

시집 표제가 ‘혀꽃의 사랑법’이니 설왕설래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반응이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혀꽃을 시의 은유 그 자체로 풀어썼습니다. 굳이 설명을 보태자면 은유법과 은유를 만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에 대한 시였습니다.

대학에서 14년째 ‘시창작’을 강의하는 선생의 처지에서는 혀꽃은 은유를 설명하기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여기에 수강생을 솔깃하게 만드는 상상이 숨어있습니다. 벌레들이 혀꽃의 유혹에 통꽃을 찾아오듯이, 혀꽃으로 은유를 이야기하면 십중팔구 쉽게 이해합니다. 꽃은 이렇듯 우리에게 많은 상상력을 가져다줍니다.

문제는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요즘 끝물인 붉은 ‘꽃무릇’을 ‘상사화’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다른 꽃입니다. 상사화는 6~7월에 피는 여름꽃이고, 꽃무릇은 9월 중순부터 10월 초에 피는 가을꽃입니다. 꽃무릇과 상사화의 차이는 색깔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꽃무릇은 붉은색을 띠고 상사화는 연한 보라색이나 연한 분홍색으로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석산화라고 부르는 꽃무릇은 무리 지어 핀다고 해서 꽃무릇이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상사화는 이름답게 호젓하게 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한다.’라는 화두에 빠져 이 두 꽃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식물의 크기, 꽃의 모양, 학명 자체가 다른 꽃입니다. 잎과 꽃이 피는 순서도 다른데, 전남 영광군에서는 꽃무릇으로 ‘상사화 축제’를 열어 핀잔을 사기도 했습니다.

요즘 만날 수 있는 연보라, 흰색 계열에 우리나라 ‘들국화 3종 세트’가 있습니다.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가 그 꽃입니다. 웬만한 수준이 아니면 그 구분이 어려워 이 3종류의 국화를 구분할 줄 알면 우리나라 들국화를 다 안다고 할 정도입니다.

벌개미취는 별개미취라고도 합니다. 6~10월에 꽃이 피기에 ‘한여름에 웬 들국화?’란 의문을 가진 꽃이 있다면 벌개미취입니다. 쑥부쟁이는 벌개미취와 다른 점은 꽃의 색깔이 좀 더 짙은 자주색입니다. 쑥부쟁이는 종류가 많습니다. 까실쑥부쟁이, 청화쑥부쟁이, 섬쑥부쟁이, 단양쑥부쟁이, 갯쑥부쟁이, 가는잎쑥부쟁이, 미국쑥부쟁이 등 종류가 많아 정확하게 구분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구절초는 9~11월에 줄기 끝에 지름이 4~6㎝의 연한 홍색 또는 흰색 두상화가 한 송이씩 핍니다. 벌개미취, 쑥부쟁이는 꽃잎이 촘촘하게 피고, 구절초는 그보다는 느슨하게 핍니다. 이들 모두 처음에서 이야기한 ‘혀꽃’입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질 일만 남았습니다. 가을에 들길 산길에서 만나는 벌개미취, 쑥부쟁이, 구절초를 찾아보면서 관찰하고 구분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꽃 하나를 아는 일, 그건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즐거움과 같기 때문입니다.

정일근 경남대 석좌교수 UMFF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