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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의 불역유행(不易流行)(5)]의전은 기술인가, 예술인가?

오는 24~26일 울산서 ‘NEAR 총회’ 산업수도 매력 알릴 대규모 국제행사 개막일 두달 전부터 본격 행사 준비 한치의 실수도 없는 손님 맞이 위해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는 자세로 임해

2023-10-06     경상일보
▲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포르투갈 대사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울산에서 큰 국제행사가 열린다. 동북아 6개국의 79개 광역지자체가 참여하는 ‘동북아시아지역 자치단체연합(NEAR)’ 제14차 총회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울산시 관계자들은 10여명의 해외 고위급 대표단을 포함한 200여명의 손님들을 어떻게 하면 잘 맞이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그들 모두가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면, ‘국제화된’ 산업수도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는 울산 홍보대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사의 전체 일정은 고위급 전체 회담, 개막식, 2개의 총회 세션, 태화호 탑승 울산항만 관광, 공식 만찬, 산업시설 및 태화강 국가정원 시찰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김두겸 시장은 총회 의장 자격으로 이틀간의 공식행사를 주관하게 된다.

소규모 가족 행사일지라도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을 다했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고위급 국제행사라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개막일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야하고, 이벤트 장소, 차량, 숙소, 영접, 영송, 오·만찬 메뉴 및 배경음악, 마이크와 조명, 포디움과 프롬프터, 음료와 다과 등 수많은 점검목록을 체크해야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행사라면, 더욱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 수개월 전에 외교부 차관보와 의전장이 각각 사전 답사를 다녀오고, 두 달 전부터는 격주 단위로 점검회의를 하고, 해외출발 일주일 전쯤 대통령 주재로 최종 점검회의를 한다.

▲ 포르투갈 대통령궁에서 열린 주포르투갈 대사신임장 제정식.

접수국도 마찬가지로, 최고의 예우를 해야 하는 일급 의전행사이기 때문에 명품 의전과 경호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문제 발생의 소지는 매우 적다. 그럼에도 곳곳에 지뢰가 있다. 주니어 외교관 시절에, 대통령 행사 준비요원으로 노르웨이에서 한 달간 머문 적이 있다. 당시 같이 파견되었던 선배의 조언이 금과옥조처럼 떠오른다. “의전은 잘해야 본전.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쪽박.” “백문이 불여일견이듯, 매사 직접 확인하라(The proof of the pudding is in the eating).” “실수 없는 의전은 그저 기술, 완벽하게 끝마쳤다면 예술.” “예술이기를 바란다면, 체크, 체크 그리고 또 체크.” 그 선배는 나중에 의전장을 역임했고, 후배들 사이에서 의전의 도사(儀仙)로 통했다.

2004년 의전실 주한공관과장 때부터, 대통령 순방관련 국내외 언론보도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인데, 사소한 의전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과장보도하면서, 총체적인 행사의 실패처럼 평가하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해왔다.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면 비난할 수 있겠고, 잔소리도 달게 받아야겠지만, 좋았다면 우선 박수를 쳐야한다. 작은 실수를 눈감아 준다고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험상,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주변국 언론들은 그런 측면에서 한결 너그럽고, 여유가 있다.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언론의 실수 찾기 노력에 맞서, 우리 의전도 진화하고 있다.

▲ 주 헝가리 대사 시절 헝-한 의원친선협회 회원 관저만찬.

우리 정상이 레드카펫에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어야 하기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며 상대국 의전담당을 닦달하고 있고, 공항에 도착한 전용기의 조종석 위에 설치된 태극기의 문양 앞뒤가 바뀌지 않았는지를 이중삼중 체크해야 한다. 정상 행사시, 수백 가지 항목의 체크 리스트가 있다. D-1일의 마지막 체크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와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 눈을 감고 모든 동선상 예상되는 가상현실을 떠올려 매 순간마다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에 대한 플랜B를 고민해야한다. 플랜B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의 플랜C까지도. 이러한 과정을 수차 진지하게 거쳐야, 현장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위기상황에 처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수습할 수 있다.

‘의전의 성인(儀聖)’이라고 불렸던 어떤 선배가 의전장 시절 보여준 교훈적 일화가 있다. 전용기가 막 도착했고, 대통령은 트랩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내 창문너머로 힐끗 보았더니 공항 도착 행사대형이 상대국 임의대로 바뀌어 있지 않은가. 보통 사람 같으면 대개는 패닉에 빠져 안절부절하거나, 슬그머니 사라졌을 것이다. 근데 이 선배는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 설명 대신에, 대통령에게 “뭔가 착오가 생겼으니, 이미 보고 드렸던 내용은 모두 잊어버리시고, 저만 믿고, 따라 오십시오”라고 했고,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어떤 해프닝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극복할 수 있었던 위기였다.

역대 외교장관들은 대체로 의전실 간부들을 소위 오른팔들로 임명한다. 나중에 외교장관이 되신 어떤 분은, 평소 “형식적인 일만하는 의전실에 똑똑한 외교관들이 왜 필요한가?”, “의전실은 아웃소싱해도 되고”, “의전실 근무자들을 국내외 인기보직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외교장관이 된 후 몇 차례의 정상회담을 겪으면서 의전실 직원을 대폭 보강하고 측근을 임용했다. 의전실 기본 임무가 국내외 정상행사를 물 흐르듯 진행시키는 것인데, 실수가 잦으면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해지고, 결국 믿지 못할 외교부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믿을만한 인재를 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지만, 과거 의전실 직원들은 국가원수와 함께 전용기에 탑승해 해외 곳곳을 누빈다는 사실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양복 정장을 멋있게 빼입고, 올백 헤어스타일에 무선수신기를 귀에 꽂은 채, 당시 경원의 대상이던 경호실 요원들과 호형호제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런 호사를 부러워하던 필자도 의전실 과장때를 포함해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 행사를 주관했다. 10월 NEAR 울산총회는 성공한 행사가 될 것이다. 의전이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는 자세로 다들 임하고 있기에.

박철민 울산시 국제관계대사 전 주헝가리·포르투갈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