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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포퓰리즘과 정책의 쇠퇴

대중영합주의로 전락한 포퓰리즘 합리적인 정책 결정 막아 정책 쇠퇴 내년 총선 앞두고 더욱 기승 부릴듯

2023-12-05     경상일보
▲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

‘포퓰리즘(populism)’은 대중을 뜻하는 라틴어 ‘populus’에서 유래한 단어다. 그래서 소수 엘리트만이 아닌 다수 대중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다수의 참여와 지배를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포퓰리즘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대중영합주의’로 전락했다. 이런 경향은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포퓰리즘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 예비타당성 조사가 무력화되고 있는 현상이 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재정법상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의무적으로 예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은 예타 면제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악용해 경제적 타당성이 희박한 사업들이 선거를 위해 무더기로 채택되고 있다. 금년에 발의 또는 통과된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최소 92조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불필요한 정책들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시급한 연금개혁이나 전기료 인상과 같은 것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한정 미뤄지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선호에 맞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정책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인 분석과 체계적인 검토가 생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분석과 검토는 소수 계층을 위한 정책을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간주해 혐오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조율하고 정책의 긍정적·부정적 파급효과를 분석해 결정돼야 할 정책들이 ‘전격적으로’ 공표된다. 김포의 서울 편입이라는 이슈를 보자. 이는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 행정권 개편, 주민 편의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 주변의 도시주민들의 지지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일단 발표하고 본다. 그 뒤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시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포퓰리즘은 정책을 매우 단순화해 제시한다. 정책이 복잡하면 이해도 어렵고 지지확보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횡재세’ ‘메가 서울’ 등 심플한 개념으로 대중들을 유혹한다. 비용에 대한 언급은 줄이고 효과만 과장한다. 만일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전문가들이 있으면,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매도해 버린다.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철도’의 경우, ‘영호남의 결합’만 강조하고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에는 눈을 감는다. 횡재세를 반대하면 여당 지지자로, 메가서울을 반대하면 야당지지자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포퓰리즘 정책은 고위 핵심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권위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가 생략된다. 또한 나름대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 관료집단이나 국책 연구기관들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은 나중에 정책 합리화나 정당성 부여에 동원될 뿐이다.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를 비판해야 할 언론도 성향에 따라 여야가 내세우는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 선택적 비판을 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양한 사회적 소통매체가 발달하면서 포퓰리즘은 더욱 더 강화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주장이 일시에 대중들에게 확산되고 이에 대한 반응이 즉각적으로 형성되므로, 정치인들은 관료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욱이 인터넷 매체에는 수많은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특정 그룹에 의한 일방적 주장이 아무런 여과 없이 전달된다. 일부 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까지 만연해 포퓰리즘은 앞으로 더욱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포퓰리즘은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가로 막고, 정책을 쇠퇴시키고 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모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돼야 할 중차대한 사안들이 정책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고위 정치인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결정되고 있다. 전문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치 자신의 결정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훌륭한 정책인 것으로 포장해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정책의 쇠퇴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쇠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에서 한 국가나 정권이 무너진 것은 다름 아닌 포퓰리즘이었다는 것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깊이 자각했으면 한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