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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88)]페즈(Fez), 냄새의 추억

모로코 중부에 위치한 교통 요지 거대 시장·수공업장서 악취 진동 고된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곳

2023-12-26     경상일보
▲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면 이마에 뿔처럼 툭 튀어 나온 곶을 만난다. 건너편의 이베리아 반도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운 곳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가르는 좁은 해협이 만들어진다. 지브롤터 해협,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물길이며, 지중해의 서쪽 관문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마주 보고 있으니, 교통과 전략적 요충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많은 민족들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다. 이곳은 본래 사막의 유목민 베르베르 족이 살던 곳이다. 그러나 숱한 외부세력의 침탈 속에 주인이 수없이 바뀌곤 했다. 탁월한 조선 기술로 지중해 패권을 쟁취했던 카르타고가 먼저 이곳을 점령했지만, 기원전 3세기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후 로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위대한 로마제국도 7세기경 북아프리카의 해안을 따라 이곳에 도착한 이슬람군에게 패퇴하며 영유권을 내주었다. 유럽 정복을 꿈꾸던 이슬람군은 최단 거리에 지중해를 건널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셈이다.

해협을 건너 스페인 땅(당시에는 기독교인의 서고트 왕국)에 도착한 이슬람군은 8세기경 코르도바를 정복할 정도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퇴로를 위한 북아프리카의 안정도 확장 못지않게 중요했다. 모로코 일대에 정착한 이슬람인들은 8세기에 독립적인 왕조(이드리스 왕조)를 세우고, 페즈(Fez)를 그 수도로 삼았다.

모로코 중부 페즈강 유역에 있었던 페즈는 이슬람 도시로 재탄생했다. 이슬람인들은 튀니지의 예처럼 이곳도 ‘페즈 메디나’라고 불렸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북아프리카 대상로에 위치했기에 상공업으로 나날이 번창해 갔다. 9세기에는 세계 최고의 이슬람 대학 알카라윈 대학이 설립되어 학문이 발달했고, 거대한 성벽, 왕궁과 관청, 거대한 시장과 수공업장을 갖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 모로코 중부 페즈 강 유역에 있었던 페즈는 9세기 세계 최고의 이슬람 대학 알카라윈 대학이 설립돼 학문이 발달했고 거대한 성벽, 왕궁과 관청, 거대한 시장과 수공업장을 갖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사진은 페즈의 테너리.

도시의 서남쪽에 있는 알마크젠 왕궁은 그리 오래된 모습이 아니다. 왕궁 앞에 거대한 광장을 두었으나 정착 왕궁의 외관은 그리 거창하거나,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다. 왕궁의 정문은 3개의 아치문으로 구성된 이반(Ivan)형식의 건물이다. 말굽형 아치의 입구와 황금의 문, 섬세한 모자이크 타일로 구성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이슬람 건축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슬람 건축의 화려함을 보려면 성문인 블루 게이트(Blue gate)를 찾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이는 페즈 메디나(페즈 구도심)로 들어가는 정문이기도 하다. 입면적으로는 개선문 형식의 성문이나 세부적으로는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긴다. 뚜렷한 말굽형 아치의 윤곽은 동화의 삽화처럼 선명하다. 입구 상부를 장식하는 모자이크 타일의 색상도 다채롭고, 화려하다. 다만 색상은 안과 밖이 서로 다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입면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청색을 사용했고,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면에는 신문화를 상징하는 녹색을 사용했다. 안에서 보면 신도시로 향하는 문이 되기 때문이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 도시 중심의 간선도로가 직선으로 뻗으며 시장을 관통한다. 도시구성은 투니스 메디나와 비슷하지만 페즈는 시장(수크)의 면적이 훨씬 크고, 또 복잡하다. 상품의 종류가 다양하고 상점 수도 많다. 상인과 관광객, 주민들이 좁은 가로에 뒤엉켜 구경하거나 흥정하는 모습이 장마당의 활기를 자아낸다.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를 연상시킨다. 중층의 건물들은 아래층을 상점으로 사용하고 위층에는 주택을 두기도 한다.

간선도로는 주택가 골목으로 연결된다. 무려 9000여개가 넘는 골목이 거미줄같이 페즈 메디나를 수놓는다. 간선도로는 직선이지만, 골목들은 복잡한 선형을 가질 뿐 아니라 난해하게 얽혀있다. 이방인이 가이드 없이 들어섰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좁고, 폐쇄적인데다가 건물들마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 지도를 보아도 내 위치를 모를 만큼 당황스럽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도둑들이 특정한 집을 다시 찾아오기 위해 문에다 표시하는 것을 보면, 건물들이 서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유사한 것은 아랍건축의 전통이라 하겠다. 당연히 방어에는 효율적인 도시구성이 된다.

황토벽 골목의 폭은 넓어야 3m, 좁은 곳은 1m가 되지 않는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폭이기에 나귀로 짐을 옮겨야 할 정도이다. 협착한 탓에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가려 그늘진 공간을 만들어 준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기후를 이겨내기에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가로변 상가에서 타프를 치거나 발을 얹어 그늘을 만든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주 불어오는 모래폭풍을 막기에도 밀집도를 높이는 것이 효율적이다.

간선도로를 따라 중심부로 들어간다. 좁은 골목에서 악취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동물 사체에서 풍기는 냄새와 분뇨 냄새가 뒤섞인 듯한 악취는 화생방 훈련 수준의 고통이다. 그 냄새의 진원지는 광장과 같은 공간에 설치된 가죽염색 작업장(tannery)이다. 짐승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일련의 작업이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짐승 가죽에서 나는 냄새는 물론 새똥까지 섞어 쓴다니, 고약한 악취가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작업장 주변에는 2~4층 규모의 가죽제품 상점들이 둘러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테너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테라스를 갖는다. 염료별로 다채로운 색상이 담긴 염색 통이 마치 물감을 담는 팔레트처럼 회화적 풍경이 된다. 테라스에서 테너리를 내려다보는 모습은 전문 사진가들의 촬영 대상이 되어 유명 잡지의 화보를 장식하곤 한다. 그러나 사진은 악취를 참아내며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페즈 노동자들의 고통과 땀 냄새를 담아주지 못한다.

여행은 낯선 경험과 만나는 것이다. 그 경험은 시각적인 것에서부터, 청각적, 촉각적, 후각적, 미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다. ‘남는 게 사진뿐’이라고 인물 사진 찍기에만 몰두한다면 다른 풍부하고 유익한 감각적 경험을 놓치기 마련이다. 저녁 무렵 계곡을 울리던 산사의 종소리, 초가집 사랑방에 가득한 메주 띄우는 냄새, 여름 계곡에 살랑거리던 바람과 소쩍새 울음소리. 이것들은 결코 사진으로 남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감각적 경험에 담긴 서사까지 발견할 수 있다면 진정 여행의 고수라 할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