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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①]중앙도서관의 한국학 장서 ‘옥재(玉宰)문고’

경상일보-울산대 인문대학 공동기획 병원 원장이던 이강현씨 거액 기부로 초창기 한국학자들의 저술 초판본 등 인문대 교수들이 선정한 1420권 구입 국어학사(史) 초기 장서도 고루 갖춰

2024-01-19     경상일보
▲ 노경희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국어국문학

‘책을 말하다’는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교원들이 울산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책들과 그 장서를 둘러싼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로, 대학도서관의 가치와 역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편집자 주



울산대학교 중앙도서관은 1970년 ‘울산공과대학’의 개교와 동시에 설치된 공학관 2층의 ‘도서실’에서 출발했다. 1974년 뒷산 기슭에 독립 건물을 마련하면서 ‘도서관’으로 개칭됐고, 1976년 6월에 ‘울산공과대학 중앙도서관’이라는 정식 명칭이 확정됐다. 이후 늘어나는 장서와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드디어 1991년 9월4일 학교 진입로 좌측에 5층의 현 아산도서관(본관)이 들어섰다.

아산도서관이 완공된 이후 1992년부터 장서 구입 예산이 획기적으로 증액되면서, 1996년에 이르기까지 5년간 약 53억원의 장서구입비가 배정됐다. 양적 팽창만이 아니라 질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해 체계적인 도서 구입 계획도 세워졌다. 외국의 양서를 구입하기 위해 학회나 연구년을 맞아 외국에 가는 교수들에게 도서구입비를 지원해 현지에서 양서를 구입해 오게 했으며, 도서관장과 직원이 해외에 나가 현지의 교수들과 함께 서점들을 다니며 책들을 수입하기도 했다. 1991년까지 20만권이 채 되지 못한 장서수는 1996년에 50만권을 훌쩍 넘었으니 5년 만에 2배 이상의 장서를 확보한 것이다.

이후에도 꾸준히 장서가 확충돼 2005년에는 80만권이 등록됐고, 늘어나는 장서를 보관하기 위해 2006년 2월 본관 바로 옆에 신관이 개관되면서, 본관은 ‘과학예술자료관’으로 신관은 ‘인문사회자료관’으로 분할 운영됐다. 그리고 2012년에 드디어 ‘장서 100만권’을 등록하면서, 지역의 사립대학교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장서를 소유한 대학도서관의 위상을 확립했다.

이렇게 100만 장서를 확충하기까지에는 학교 측의 노력만 있지 않았다. 울산대 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기꺼이 평생을 모은 귀한 서적들이나 서적 구입 자금을 기부한 기증자들의 도움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도서관에서는 이들의 공적을 기려 기증자문고를 만들었으니, 노일문고·옥재문고·평리문고·하곡문고·정정길문고 등이 그것이다.

▲ ‘옥재문고’의 한국학 저서들.

‘평리문고’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전 동덕여대 조병무 교수가 평생 모은 책 8632권을 기증한 것으로, 문예지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권을 비롯해 창작과 평론집 등 국문학 서적들이 주를 이룬다. ‘하곡문고’는 부산에서 동국서원을 운영하며 향토사학과 서지학을 연구한 이진환 선생의 장서 중 조선과 중국의 고전적 1861권을 기증한 것이다. ‘노일문고’는 일어일문학과 노성환 교수와 그 지인인 일본인 교수들의 기증서를 모아 만든 것으로 지금은 일본에서도 구하기 힘든 일본 학술서들이 적지 않다.

울산대 총장을 지냈던 현 정정길 이사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정길문고’는 사회학 저서들이 다수를 이룬다. 이외에 따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울산 산업국가연구소 소장이었던 최해광씨의 장서 2388권 등 울산대의 발전을 기원하는 기증자들의 손길로 귀중서들이 도서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덕분에 ‘공과대학’으로 출발했던 울산대 도서관은 훌륭한 인문사회학 장서를 갖추게 됐다.

‘옥재문고’는 ‘한국학’ 주제에 특화된 책들이다. 당시 산부인과 병원 원장이었던 이강현 씨가 1986년 9월 도서관에 거액을 기부했고 이로써 마련된 자금으로 한국학 서적들을 구입했다. 첫 해에는 기금 중 일부로 일괄 구입하고 나머지 기금은 금융 기관에 예치해 매년 그 이자로 국어국문학과와 사학과, 철학과 교수들이 관련 도서를 선정하고 전문 서점상을 통해 구입했다. 이강현 기증자는 이후에도 추가로 서적 구입비를 기부하는 등 문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86년부터 옥재문고는 한국학 주제별로 1000권에 이르는 책을 구입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부터 더 이상 기금의 이자만으로는 비용이 충분치 않아 한동안 중지됐다가, 2003년에 남은 기금 전액으로 책을 구입하면서 서적 구입은 마무리됐다. 현재 옥재문고의 장서는 1420책에 이른다.

▲ ‘옥재문고’ 관련 서류철.

옥재문고는 인문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에서 구입 도서를 선정했고, 이후 전문 서점상들이 널리 학술서들을 구해 와 충실한 장서를 구축할 수 있었다. 대학 교원들의 엄격한 도서 선정과 전문 고서상들의 적극적인 탐서 작업이 맞물려 이루어낸 특별한 문고이다.

옥재문고의 장서를 보면 일제강점기 서적부터 1970~1980년대 국학자들의 저술 초판들이 주를 이룬다. 2024년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1970년대로부터도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난 터라 그 시절 책들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생각할 때, 울산대 중앙도서관이 지닌 한국학 자료의 충실함에는 ‘옥재문고’가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어학 분야의 경우 울산이 자랑하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의 <고친 한글갈>(정음문화사, 1982) 초판, 김윤경의 <조선문학급어학사>(조선기념도서출판관, 1938) 초판 등 초창기 국어학자들의 저술 초판본, 일제강점기 경성제대 조선어 교수였던 오구라 신페이의 <조선어학사>(동경 刀江書院, 1964) 초판본 등 우리 국어학사의 초기 연구 성과에 해당하는 장서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제는 낡은 서류철의 묶음으로만 남아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1980~1990년대 손으로 또박또박 쓴 구입 희망 도서 목록과 서점상들의 납품서 목록, 서적 구입 기안서, 매매 당시의 수기 영수증들을 살피고 있노라면, 오늘날 인문학의 처지와는 사뭇 다른, 이제 막 성장하는 지역 사립대 도서관의 넘쳐나는 패기와, 이제는 퇴임하거나 돌아가신 원로 선생님들의 소장학자 시절의 열정이 절로 느껴지며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한편에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아울러 드는 건 그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노경희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국어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