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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속의 꽃(8) 등꽃]자줏빛 꽃잎 흩날리는 여름의 시작

2024-05-21     경상일보
▲ 노경희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등꽃은 초여름에 꽃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주렁주렁 핀다.

나무 덩굴 가득 자줏빛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주위의 짙은 신록과 어우러지며 더없이 화려한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밟으면 뜰의 푸른 이끼에 자취 남길까 두려운데
보랏빛 제비, 노랑 꾀꼬리는 끊임없이 찾아오네.
조정과 산림의 풍취 다르지 않으니
활짝 핀 모란 마주하여 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네.

恐敎履跡浣庭苔(공교리적완정태)
紫燕黃 鸝不厭來(자연황리불염래)
鍾鼎山林無二致(종정산림무이치)
藤花對吐牡丹開(등화대토모란개)

조선후기 시·서예·그림 삼절(三絶)로 불린 신위(申緯)가 ‘사월초파일’에 지은 ‘4월 8일 뜰의 정자에서 지은 절구(四月八日園亭絶句)’ 4수의 작품 중 첫 번째이다. 조선시대에도 등꽃은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피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이하의 작품에서는 온 나라가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떠들썩한 모습을 말하기도 하는데, 위의 작품에서는 다채로운 빛깔을 총동원하여 이 좋은 날을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뜰을 덮은 푸른색 이끼와 보라색 제비, 황금빛으로 빛나는 꾀꼬리에 보라색 등꽃과 붉은색, 하얀색 다양한 빛깔들의 모란꽃에 이르기까지 오색찬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 신명연의 ‘산수화훼도- 등꽃’(국립중앙박물관).

‘종정(鍾鼎)’은 옛날에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종과 솥을 말하는 것으로 현달한 관리들을 뜻하며 산림은 일반적으로 속세를 떠나 은거하는 처사를 의미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조정의 관료들과 산속의 승려들을 아울러 비유하는 뜻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불교를 이단이라 부르며 멀리했던 조선의 사대부였으나, 이날만큼은 대궐에 있든 산림에 머물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는 마음이 담겨있다.

신위는 등꽃을 주제로 여러 편의 한시를 남기고 있으며, 그 아들 신명연(申命衍)은 그림으로도 남긴 바 있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부자가 정답게 그린 조선 등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노경희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