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기별로 주어진 역할 달라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
노년기 삶의 자세에 대한 고민 필요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한해 한해 지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고 느끼는 감정도 엷어진다. 부러운 사람도 줄어들고 부러운 일도 줄어들게 된다. 사람살이의 모습이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평범한 깨달음이 주는 작은 위안이다. 남다른 재주를 타고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또 존경받는 비범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상 떠나는 것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삶을 다른 사람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짧은 생애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나이 들어서도 부러운 사람은 있다. 흔하지 않은 재물이나 명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한다. 지금 순간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이 들어도 변함없이 부러운 사람은 따로 있다. 행복이라던가 순간의 즐거움을 애써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지루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냥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들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감정과 더불어 아픔과 슬픔도 삶에 필요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늘 어느 정도의 아픔은 안고 살아가지만 고통을 다스리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는 아직도 서투르고 익숙하지 못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아도, 아픔이나 시련 자체보다 고통을 원망하고 회피하려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아직도 그저 평안한 일상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는 어린 마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나기 힘든 삶의 굴레임이 분명하다.

행복이나 불행이라고 평가되는 인간사를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힘은 어느 시기에나 필요할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노년기의 삶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보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재물이나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보다는 슬픔을 품위 있게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을 더 가까이하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반추하고 작은 의미라고 부여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소망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보람된 일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가늠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끝까지 지속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부 활동에서 찾을 수만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이나 학문의 대가들도 이것을 깊이 고민하면서 이론을 정립하고 작품에 반영했다. 인간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가장 고귀한 행위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대표적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체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한 사유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삶의 끝자락에서 취할 수 있는 고귀한 태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자신에게 닥친 죽음 앞에서 발버둥 치는 한 중년 남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육신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의 거친 태도가 가족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를 문득 깨닫게 되면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끝났다.” 삶이 끝났다가 아니라 죽음이 끝났다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점점 노인들이 많아지는 세상이다. 질병이 지배하는 영역 속에서 남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갈 것이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견지할 수 있는 태도나 자세가 어떤 것일까를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질병 근처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생각과 태도가 가족과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생애에는 시기마다 다른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 있다. 노년기에 주어진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필요한 자세와 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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