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은 그 생김새가 패랭이(신분 낮은 역졸이나 보부상이 쓰던 모자)와 닮았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6~8월에 꽃이 피고 이맘때 보리 이삭 모양의 열매가 익는다. 한자어로 ‘석죽화(石竹花)’ 또는 ‘지여죽(枝如竹)’이라고도 한다.바위틈이나 모래밭 같은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줄기가 대나무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꽃을 두고 지은 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려 때 시인 정습명(鄭襲明, ?~1151)이 지은 이다.수수한 듯하면서도 화려한 패랭이꽃은 외딴곳에 머물면서 굳이 영화를 찾지 않는다
콩꽃은 여름이 다할 무렵 피는 꽃이다. 장마가 지난 후 가지의 잎겨드랑이 사이에서 나온 꽃대에 흰색이나 보랏빛 꽃들이 앙증맞게 피었다가, 가을이 올 무렵 꽃이 떨어지면 그 자리마다 콩꼬투리가 열린다. 옛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콩꽃은 여름날 큰 비가 내린 직후 피었다가 꽃이 진 뒤 서리 내리고 겨울옷을 준비해야 하는 가을을 예고하는 꽃이었다.15세기 문인 서거정의 라는 시에는 그러한 풍경이 잘 나타난다.길은 응당 도잠(陶潛)에 해당하고시는 사조(謝朓)를 추억하노라.신세는 유유히 지나가는데세월은 성큼성큼 돌
여름이나 초가을의 강가와 저습한 땅에는 연한 녹색 또는 붉은빛 여뀌꽃이 핀다. 여뀌는 물가에 나서 자라고 꽃도 소박하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 꽃은 예전에 양반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던 중인이나 상민이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여뀌는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한약재로 쓰기도 하며, 훈향이 나는 잎을 향신료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맛은 밭에서 제대로 키운 채소에 비하기 어렵다. 성현(成俔, 1439~1504)은 에서 “나쁜 채소 중에 여뀌만 한 것이 없는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이다. 석류꽃이나 치자꽃, 능소화 같은 여름꽃은 열흘 이상 피어 있기도 한다. 그런데 열흘을 훌쩍 넘겨 100일 넘게 피는 꽃이 있다. 배롱나무에서 7월부터 9월까지 피는 배롱나무꽃이다.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를 줄여 발음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땅에 풀로 자라는 초본 백일홍도 있는데(원산지는 멕시코)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또 배롱나무는 그 수피(樹皮)가 매끈하여 줄기를 만지면 가지와 잎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무궁화는 ‘우리꽃’ 곧 ‘나라의 꽃’이다. 무궁화가 어느 때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무궁화를 지칭하는 한자어인 ‘근화(槿花)’에서 따와 우리나라를 ‘근역(槿域)’이나 ‘근화향(槿花鄕)’이라 부르던 모습이, 멀리 중국의 에서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꾸준히 나타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당하여 자결한 황현의 ‘절명시(絶命詩)’ 중 “금수도 슬피 울고 산하도 요동치니, 무궁화세상 이미 망했네.”에서도 조선의 지식인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 대표꽃으로 인식하던 모습을 살필 수 있다.무궁화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 중에서 연은 전통적으로 불교도에게는 신성함의 상징이요 유학자에게는 군자의 표상이었다. 송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연은) 진흙에서 나지만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지만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고 겉은 곧으며, 덩굴이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이 서 있어서 멀리서 볼 수 있으나 만질 수는 없다.”고 하여 그 독특한 품성을 지적한 바 있다.은산(銀蒜)이 발에 드리우고 한낮이 긴데오사모(烏紗帽)를 반쯤 벗으니 상쾌한 바람이 부네.벽통배를
장마에도 꽃은 핀다. 능소화는 이즈음 짧은 나팔 모양으로 피는 연한 주홍빛 꽃이다. 능소화가 피면 장마가 진다고 해서 이 꽃을 ‘장마꽃’이라고도 했다. 질 때는 송이째 툭 진다. 울산에서는 중구 동헌의 능소화가 유명하다. 덩굴로 담이나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피우는데, 때로는 그 높이가 몇 길이나 된다. 그래서 ‘하늘을 침범한다’(凌霄)는 이름을 가졌다.예전엔 문 앞에 말과 수레 가득했는데한바탕 꿈인 듯 신기루와 같구나.무지개는 아득히 달까지 이어졌는지비 오는 저물녘에 능소화 피어 있네.馬闐車咽舊時門(마전거인구시문)海蜃樓空夢一番
6월이면 골목 한 쪽이나 담벼락과 장독대 아래 한창 피는 접시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접시꽃은 한 번 심으면 저절로 번식하기에 사방에서 보이는 여름의 상징 같은 꽃이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은 긴 줄기에 큰 꽃잎이 접시처럼 활짝 벌어진 모양으로, 붉은색·분홍색·흰색·자홍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여름 내내 피어 있다. 그런데 이 꽃들은 사실 한 꽃이 계속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 한 송이는 금방 떨어지지만 이를 이어 곧장 다른 꽃이 피기에 여름 내내 끊임없이 피는 것처럼 보인다.접시꽃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다니며 핀다
치자(梔子)나무는 술잔처럼 생긴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이며 담복(薝蔔)으로도 부른다.중국 원산의 치자나무는 고려 왕조 이전에 한반도에 유입되었는데 추위에 약하여 남부지방에만 자생한다. 6~7월에 매우 짙은 향기의 하얀 꽃이 피고 열매는 노란 식용색소로 사용해 왔다.치자꽃은 꽃잎이 여섯 장이어서 육출화(六出花)라고도 한다. 6은 여섯 각으로 이루어진 눈꽃이나 태음현정석(太陰玄精石)으로 불리는 여섯 모의 수정처럼 음기가 강한 숫자이므로, 치자꽃은 동양의 대표적 음화(陰花)로 알려져 왔다.인도에서
집 앞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일주일 전 피기 시작한 꽃이 행여 지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하였다. 꽃시 연재를 하는 이의 숙명이다. 봄꽃이 사나흘, 길어야 일주일이라면 여름꽃은 제법 오래 피어 있다. 석류꽃도 일주일 넘도록 싱그러워 가슴을 쓸어내렸다.초록으로 짙어지는 세상에서 주홍으로 반짝이는 꽃은 단연 눈에 띈다. 송나라 시인 왕안석도 석류꽃의 이러한 모습에 착안하여 ‘온통 푸른 잎사귀 속 붉은 점 하나(萬綠叢中紅一點)’라 읊었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남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의 여자를 가리키는 ‘홍일점(紅一點)’이다
등꽃은 초여름에 꽃이 아래로 길게 늘어져 주렁주렁 핀다.나무 덩굴 가득 자줏빛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주위의 짙은 신록과 어우러지며 더없이 화려한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밟으면 뜰의 푸른 이끼에 자취 남길까 두려운데보랏빛 제비, 노랑 꾀꼬리는 끊임없이 찾아오네.조정과 산림의 풍취 다르지 않으니활짝 핀 모란 마주하여 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네.恐敎履跡浣庭苔(공교리적완정태)紫燕黃 鸝不厭來(자연황리불염래)鍾鼎山林無二致(종정산림무이치)藤花對吐牡丹開(등화대토모란개)조선후기 시·서예·그림 삼절(三絶)로 불린 신위(
모란은 4, 5월에 개화하여 다양한 색깔과 자태, 향기로 꽃 중의 왕 곧 화왕이라 칭송받았다. 이 꽃은 중국 원산이지만 7세기 전반 신라 선덕여왕의 지혜를 보여주는 ‘지기삼사(知幾三事, 세 가지 사건의 기미를 미리 안 일)’ 설화에 등장하여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으며,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지은 의 ‘홍(紅)모란 백(白)모란 정홍(丁紅)모란’이라는 구절로 보아 여러 색깔의 모란(사진)을 감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부귀화라는 이칭에서 보듯 이 꽃은 일반인의 부러움을 받은 면이 있으나 부귀를 추구하지 않은
언제부터가 봄일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밤이 춥지 않아 설레기 시작할 때부터다. 그렇다면 봄의 절정은 언제일까? 살구꽃이 한창일 때다. 한식과 청명 시절 핀다는 살구꽃은, 울산에서는 3월 말에 핀다.꽃 모양은 매화나 벚꽃과 비슷하지만, 매화가 질 때 살구꽃이 피고 살구꽃이 질 때 벚꽃이 핀다. 벚꽃까지 다 진 마당에 살구꽃 이야기를 하자니 머쓱하지만, 울산과 인연 깊은 시인의 살구꽃 시 한 편 읽는 것으로 봄의 끝자락을 잘 매듭짓기로 한다.오경의 등불 그림자 지워진 화장 비추는데이별을 말하려 하니 애가 먼저 끊어지네.
자두의 우리말은 ‘오얏’으로 자두꽃은 ‘오얏꽃’이라고도 불린다. ‘자두’라는 이름은 ‘진한 보라색, 복숭아를 닮은 열매’라는 뜻으로 부르던 ‘자도(紫桃)’가 변한 것이다. 4월에 꽃이 피고 7월에 열매를 맺는다. 자두나무는 에서 “주나라에서는 매화와 오얏을 꽃나무의 으뜸으로 쳤다”고 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귀한 나무였다. 보통 ‘도리화(桃李花)’라고 하여 복숭아꽃과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자두꽃은 봄 풍경을 노래하는 작품에서 복숭아꽃과 함께 언급된다. 이는 두 꽃이 피는 시기가 거의 같고, 하얗고 작은 꽃잎이 무성하
배꽃은 남부지방에서 3, 4월에 개화한다. 배는 상큼한 식감을 자랑할 뿐 아니라 전통 음식인 갈비찜이나 육회 등의 요리 재료로 쓰인다. 배를 뜻하는 한자 ‘리(梨)’는 이별을 뜻하는 ‘리(離)’ 자와 동음이어서 이별을 의미하므로 배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는 선물하지 않은 과일이었다.배꽃은 낮에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특히 주목받았다. 달밤의 배꽃은 달빛 속의 매화와 더불어 봄밤의 운치 있는 정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품이 이조년(李兆年, 1268~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
새봄이다. 캠퍼스 목련나무엔 꽃봉오리가 막 부풀기 시작했다. 목련(木蓮)은 연꽃을 닮은 꽃이 나무에서 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목련 꽃봉오리는, 가만 보면 꼭 붓처럼 생겼다. 그래서 목련꽃을 ‘목필화(木筆花)’라고도 한다.고려 때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목련 꽃봉오리의 이런 모양에 착안하여 ‘목필화’라는 시를 지었다.天工狀何物(천공상하물) / 하늘이 무슨 물건 그려 내려고先遣筆花開(선견필화개) / 목필화를 먼저 피게 하였나.好與書帶草(호여서대초) / 서대초와 함께詩家庭畔栽(시가정반재) / 시인
진달래는 다른 꽃들보다 이른 시기, 잎이 나기 전에 피는 꽃으로 나뭇가지에 연둣빛 새순이 돋기 전 오직 붉은 색으로만 온산을 물들이는, 그야말로 봄을 알리는 꽃이다. 옛 문인들은 ‘두견화(杜鵑花)’라고도 불렀는데 여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의 촉(蜀)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고국에서 쫓겨난 뒤 고향땅을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그 넋이 두견새가 되어 밤새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고 한다. 그 통한의 피눈물로 꽃잎을 붉게 물들인 것이 바로 진달래꽃이다. 그래서인지 옛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빼어난 아름다움을 지니고도 산속에
지난 2월 4일은 입춘이었다. 입춘은 봄기운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절기로 이때부터 봄철이 시작된다고 한다. 높은 산 고갯마루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남아서 조석으로 한기가 몸을 휘감지만 한낮의 따스한 햇살은 봄이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매화는 예로부터 봄을 재촉하는 꽃으로 인식하여 시인묵객들이 다양한 시와 그림을 남겨 놓았다. 매화는 섣달에 피는 납매로부터 설중매, 홍매, 백매, 청매, 분홍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문헌에 등장하는데 공통점은 대체로 봄의 전령사로서 선비의 고결한 기개를 상징한다는 점이다.섣달의 눈 속에 피어 있으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