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여름산을 찾아서 - 경북 청송 주왕산절골계곡 따라 흐르는 물에거짓과 위선이 모두 부서진다비우고 돌아서자 산도 일어선다경북 청송의 주왕산은 튼튼하다.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거대하고 강건한 돌로 이뤄진 산은 무겁게 솟아 올라 있다. 서로
추사 김정희 자취 서린 대흥사 입구 나무터널 청량감 더해김남주·고정희 시인 생가 땅끝마을 가는 길목 나란히 위치연두빛 풍경에 잠긴 섬진강을 건너자 낯선 냄새가 바람 속에서 묻어 난다. 집요하게 따라붙던 차들은 눈에 띄게 줄어 든다. 컨베이어 위에 멈춰 서서 모든 운동이 정지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 만큼 한산하다.섬진강 서쪽 전라도의 야트막한 산들은 봉긋이 솟
주인공 길녀 고단한 삶 이어간 포구한창 살오른 영덕대게 찾는 인파에목청 높여 흥정하는 아낙들 여전해풍문으로 만발했던 경북 영덕의 복사꽃은 지고 없다. 5월 말까지 살이 피둥피둥하게 오른다는 영덕대게와 이제 본격적으로 초록빛에 힘을 주는 청정의 나무와 들풀만이 관심의 끄트머리를 붙든다.소설가 김주영씨의 장편소설 에서 경북 영덕 강구항은 일제시대 말기부터 한국
못다이룬 사랑 간직한 창건설화무량수전 옆 거대한 바위 '부석'서로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 흔적영주 부석사(浮石寺)의 봄은 더디 온다. 지난 가을 절 주위를 노랗고 빨갛게 물들였을 은행나무와 사과나무는 제 잎 다 털어낸 채 아직도 맨 가지로 봄을 기다린다. 산문으로 올라가는 호젓한 길 옆, 듬성듬성 피어난 노란 산수유만이 황량한 풍경에 봄이 근접해오고 있음
백석 시인의 삼천포1930년대 남해안 기행 연작시 쓴 백석 정겨운 남도풍경과 순박한 장터 사람들 향토색 짙은 시어활용 따뜻하게 그려내겨우내 깡깡 얼었던 땅이 봄볕에 숨을 죽인다. 봄기운에 녹아 물기를 머금은 땅은 푹신하니 누긋하다. 농부는 볕에 내놓은 쟁기며 가래 등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긴다. 양팔 벌리면 끝과 끝이 닿을 것 같은 좁은 농로 위로 경운기가
백석 시인의 삼천포삼천포항에서 백천사 가는 길 한 시골 마을에서 바라본 풍경. 볕이 유난히 따뜻했던 마을 멀리 남해바다가 보인다. 마실 나온 할머니들이 느릿느릿 농로를 걸오고 있다. 겨우내 깡깡 얼었던 땅이 봄볕에 숨을 죽인다. 봄기운에 녹아 물기를 머금은 땅은 푹신하니 누긋하다. 농부는 볕에 내놓은 쟁기며 가래 등 농기구를 주섬주섬 챙긴다. 양팔 벌리면
광해군8년(1616년) 12월 윤선도(1587~1671)가 예조판서 이이첨을 탄핵하는 상소(병진소)를 올렸다. 이이첨은 대북(大北)의 좌장이었고, 당시 정권은 대북이 쥐고 있었다.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이틀 뒤 함경도 경원으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윤선도는 부산 기장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그의 나이 32세였다.'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을 남기면서
조성기씨의 단편소설 '통도사 가는 길'의 주요 배경인 밀양 삼랑진과 양산 물금은 가까우면서도 이질적인 고장이다. 둘 다 부산을 생활권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두 지역을 오가는 대중교통 수단은 기차밖에 없다. 무궁화호 기차로 10여분이면 충분하지만 기차가 드물게 운행돼 실지로는 멀게만 느껴진다.심지어 삼랑진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밀양에서도 양산으로 바로 가
김시습 '금오신화'를 따라간 경주 남산권력을 향한 음모와 협잡은 조선왕조 초입을 피로 물들였다. 태조는 형제를 죽인 아들 이방원이 싫어 함흥으로 떠났다. 이방원의 살육에 몸서리쳤던 태조도 수명의 차사를 죽인 뒤 서울로 돌아왔다.피의 역사는 이어졌다. 1453년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이 실세였던 황보인과 김종서를 죽였다. 1455년 수양대군은 단종을 폐위했
이덕무의 '가야산기'를 따라간 해인사'문학기행'이 어느새 보통명사가 돼버렸다. 문학기행의 대중화도 한 원인이겠지만 활자매체가 점점 매력을 잃어가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문학이라는 것이 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라면 옛글의 정취와 현대글의 치열함이 녹아있는 풍경도 늘 새롭게 변모할거라 믿는다.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여맨다. 임인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