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금오신화'를 따라간 경주 남산

권력을 향한 음모와 협잡은 조선왕조 초입을 피로 물들였다. 태조는 형제를 죽인 아들 이방원이 싫어 함흥으로 떠났다. 이방원의 살육에 몸서리쳤던 태조도 수명의 차사를 죽인 뒤 서울로 돌아왔다.

피의 역사는 이어졌다. 1453년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이 실세였던 황보인과 김종서를 죽였다. 1455년 수양대군은 단종을 폐위했다. 1457년 단종은 성삼문, 박팽년 일파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다. 그해 12월 단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몽주 등의 피로 건국된 조선의 시작은 온통 검붉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됐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다. 머물면 권력에 대한 환멸과 울분이 스물스물 솟구쳐 올랐다. 거지반 광인으로 떠돌던 그는 경주 남산(금오산)에 안착했다. 용장사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7년을 살았다. 70여체의 석불이 웃고 있는 남산에는 사바세계의 권모술수와 살육의 절망이 없었다. 술과 자연을 벗하면서 비로소 책을 읽고, 시를 썼다.

늦가을의 을씨년스러움이 묻어나는 용장사지 가는 길은 호젓하다. 주말 등산객이 훑고 간 평일의 계곡과 등산길은 인적이 거의 없다. 따뜻한 햇볕을 쬐던 산짐승이 후다닥 달아나며 애꿎은 등산객을 놀래킨다. 마른 먼지 풀풀 날리는 등산길은 설잠교(雪岑橋)까지 평탄하다. 용장골을 가로지르는 설잠교는 지난해 11월 완공됐다. 김시습의 출가명인 '설잠(雪岑)'을 따 이름지었다. 설잠은 깨끗한 눈이다.

설잠교는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의 세계로 안내하듯 드러누웠다. 그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薔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州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의 이야기 모두 삶과 죽음은 한 공간에서 부대낀다.

'만복사저포기'에서 노총각 양생은 부처와 저포놀이(나무로 된 주사위를 던져 승부를 내는 놀이)에 이겨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눈다. 그러나 왜구에게 목숨을 잃은 여인은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다. 양생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인의 제를 지내며 혼자 살아간다.

사람과 귀신의 사랑은 '이생규장전'에서도 이어진다. 이생은 담너머로 엿본 처녀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부부가 되고 여인은 홍건적의 난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이생 부부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어느날 부인이 이생 곁은 떠나자 이생도 곧 숨을 거둔다.

설잠교를 지나 가파른 돌비탈을 오르며, 냉엄한 현실 앞에서는 삶과 죽음을 초월한 '연리지'(連理枝·남녀의 애정 깊음)도 어쩔 수 없다는 김시습의 현실 인식에 섬뜩해진다. 비탈이 잠시 평평해지는 곳에 용장사지가 있다. 기단으로 쓰였을 돌덩이와 허물어진 석축만 덩그러니 남아 초라하다.

용장사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세개의 원형 기단 위에 앉아 있는 삼륜대좌불(보물 187호)이 만날 수 있다. 모양이 특이하고 아름답지만 머리가 없다. 삼륜대좌불 옆에는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머리 위로 탑신이 보인다.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186호)이다.

다시 가파른 바위를 타고 올라 주변이 환해지는 곳에 탑은 서있다. 거대한 절벽 전체가 기단인 탑 옆에 서자 시야가 탁 트인다. 멀리 바위가 듬성듬성 박혀 강건한 골격을 자랑하는 산맥들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탑 아래에서는 바위를 오르는 등산객들의 거친 호흡이 바람에 실려 들려온다. 김시습이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완성했다는 탑 안내판이 등산객들의 시선을 잠시 끌어당겼다가, 곧 놓아준다.

무엇이 실의와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댔던 김시습을 남산으로 이끌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어쩌다 보니 경주까지 와서 머물게 됐다는 운명론을 받아들이기에, 지천으로 석탑과 석불이 널려 있어 또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남산의 주술은 예사롭지 않다.

김시습은 경주부윤 김담과 통판 신중린의 후원으로 용장사 근처에 허름한 집을 짓고 살면서 '금오신화'를 완성했다. 불교적 이상향의 현실태인 남산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판타지(환상)가 완성됐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는 삼촌이 조카를 죽이는 끔찍한 현실에 눈감고 싶었고, 남산은 '이 몸이 원래 환상(此身元是幻)'이라는 그의 시 한구절을 실현 가능하게 한 공간이었다. 서대현기자 [email protected]

◇ 매월당 김시습

유·불교 걸쳐 저서 다량 남겨

세종 17년(143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동봉(東峰), 법호는 설잠이다. 5세 때 세종은 그의 재주를 시험한 뒤 상을 내리고 "장차 크게 쓰겠다"고 약속했다. 이 때부터 그는 '오세'로 불렸다.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 출가했다. 10년 동안 전국을 유랑했다. 31세 때부터 경주의 남산에 정착, '금오신화'를 완성했다. 37세 이후 수락산, 설악산 등을 떠돌다 충청도 무량사에서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최초 한문 소설 '금오신화'와 '매월당집', '묘법연화경벌찬' 등 유교와 불교에 걸쳐 많은 저서를 남겼다.

◇ 용장사지 답사코스

경주시 내남면 용장1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용장사지로 들어가는 등산길이 나온다. 설잠교까지는 평탄하지만 다리를 지나면 곧 가파른 비탈이다. 다소 힘들지만 로프를 타고 바위를 오르는 등산의 맛이 있다. 용장사지에서 900여곒 임도를 걸으면 남산 제일봉 금오산 정상이다. 상사바위를 지나 마애석가여래좌상, 상선암, 삼릉으로 내려오면 된다. 4시간여 걸린다. 초행길이 부담스럽다면 남산연구소(054·745·2771)가 운영하는 무료답사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일요일과 공휴일에 답사를 진행하며, 인터넷(kjnamsan.org)으로 참가 신청할 수 있다. 출발 시간은 오전 9시30분. 점심과 먹거리는 직접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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