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제작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학교 급식 조리사로서 연륜을 쌓은 급식 대가, 배달부에서 시작해 어깨 너머 요리를 배운 후 현재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등 각자 영역에서 실력을 쌓은 ‘흑수저’와 요리계에서 소위 명인으로 알려진 ‘백수저’ 간의 대결 구도로 기획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다. 흔한 기 싸움이나 상호 비방이 판치는 예능과는 전혀 다르다.심사위원은 누가 요리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활용했는지 모르는 채, 눈을 가리고 오직 맛으로만 요리 결과를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어릴 때 우리 형제들은 선친께서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다. 개중에는 직접 겪으신 일화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번은 한밤중에 장례식장에 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에서 빨간 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그날 밤 몇 시간을 걸어도 나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무덤 근처를 계속 뱅뱅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아무리 무서워도 그런 이야기는 늘 흥미로웠다. 이미 ‘전설의 고향’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 이야기들이 흔했지만, (허구가 다소 섞인) 경험담만큼 실감 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유니스트 교수들은 삼호교 밖으로는 안 나오잖아요.”2014년께 울산대 교수들이 주도한 ‘인문도시’ 사업에 참여했을 때, 첫 모임에서 울산대 교수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삼호교는 무거동과 다운동을 잇는 다리이지만, 그 근처를 기점으로 하여 본다면 유니스트가 울산시와 접촉이 적고 고립되어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듯하다.이 말을 들었을 때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유니스트 교수로서 울산에 기여할 부분이 무엇일까 더 고민을 했다. 그래서 시민강좌를 비롯하여 지역 신문 칼럼 기고 등을 통해 울산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했고, 최근에는 역사편찬위원
폭염이 시작된 이 뜨거운 6월에 ‘자유’를 생각한다. 바로 이틀 전인 6월10일은 1926년 6·10 만세운동이 있었고, 1987년 6·10 항쟁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다.최근 미국에서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진 대학생들의 반전 운동, 친팔레스타인 운동이 벌어져 왔다. 물론 대학에 따라서 폭력이 예상되는 경우 경찰을 투입해 강경 대응하는 경우도 있으나, 다른 곳에서는 평화로운 잔디밭 점거와 시위가 이루어졌고, 졸업식 중간에, 연단에 등을 보이며 걸어 나가는 시위를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도 대학생들을 중심으
유리집. 빌리 조엘의 1998년 앨범 제목이기도 한 ‘유리집’은 바로 ‘유리집에 사는 이들은 돌을 던지지 말라’(People who live in glass houses shouldn‘t throw stones)는 영어권의 오랜 격언에서 따온 것이다. 앨범 재킷의 사진에도 한 남성이 유리로 만든 집에 돌을 막 던지려고 하는 순간이 담겨 있다.이 속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유리집에 사는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면, 밖에 있는 사람이 홧김에 그 집에 돌을 던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 유리집이 어떻게
지난해 한국의 출산율이 사상 최저치인 0.72명을 기록했다. 사실 저출산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며, 미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2023년 기준 1.6명이라고 하는데, 고작 0.72명인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1명은 넘으면서 무슨 불만이야!’ 할 수 있겠지만, 1960년대 거의 3명에 육박했던 때와 비교하면 미국의 출산율은 하락 추세이며, 백인 중산층의 경우 더욱 더 출산을 기피한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Caitlyn Collin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부모가 모두 몇 개월씩 유급 육아휴직을 가질 수
“어때요, 참 쉽죠?”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화가 밥 로스가 진행한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내에서 EBS를 통해 더빙 방영되었을 때 이 말을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로는 “That easy”라고 하는 말을 번역한 것으로 이것을 직역하면 “이렇게 쉽다”라는 뜻이다. 이는 그림을 처음 접하는 일반인들에게 “아주 어렵지 않으니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직접 한 번 해보세요”라고 독려하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밥 로스가 미리 스케치도 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그리더니만 30여 분 만에 풍경화 한 폭이 뚝
지난 해 11월, 늦은 밤에 퇴근하면서 밤하늘을 보았다. 유난히 밝은 별이 보였다. 금성인가? 보통 ‘샛별’이라 불리기도 하는 금성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보통 금성은 새벽에 볼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금성은 초저녁이나 새벽에만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목성은 태양계 행성 중 가장 큰 행성이고, 달과 금성에 이어 밤하늘에서 세 번째로 밝은 천체로서, 가을과 겨울철 한밤중에는 하늘이 맑아지기 때문에 잘 보이게 된다고 한다. 고로 내가 보았던 밝은 별은 바로 목성이었다. 밝게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예보가 있는 가운데, 아니나 다를까. 동지를 앞둔 이 시점에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닥쳤다. 그런데 왜 갑자기 ‘봄’을 언급하는가.영화 ‘서울의 봄’이 소위 ‘천만 영화’가 될 모양이다. 그리고 12월12일자로 케이팝 그룹 BTS 멤버 전원이 군대 입대를 하자, 동시에 BTS의 ‘봄날’이라는 노래도 다시 인기라는 소문도 들린다. 정말이지 요즘 들어 우연치고는 지나치게 ‘봄’이 많이 언급된다. 그래서 문득 정말 봄은 왔는지, 2023년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생각해본다.12·12 군사반란은 지금 청년
챗GPT 상용화 1년이 지난 지금, 급속도로 진전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챗GPT를 발표한지 단 몇 주 후,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챗GPT의 아버지’라 불리는 샘 알트만이 오픈AI에서 쫓겨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기로 하는 등 단 며칠 동안의 미국 실리콘밸리의 드라마는 덤이다. 어쨌든 기술의 급격한 변화만 두고 보자면, 인공지능은 효율성과 혁신을 위한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동시에 디지털 혁명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더욱더 증
불나방은 불로 뛰어드는 묘한 습성이 있는데, 이는 불나방이 딱히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빛을 나침반 삼아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날다 보면 불빛 주위를 나선을 그리며 돌다가 급기야는 불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불나방은 야행성 곤충이어서 어두운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활동을 시작한다.그런데 이동하기 위해서는 나침반 역할을 할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불나방이 불빛을 찾아 날아가는 현상은 과학적으로 ‘광학적 지향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이론에 따르면, 불나방은 불빛의 밝기
고등학교 때 갔던 수학여행을 돌아본다. 교실과 집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밤을 새우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평소 어렵고 무서웠던 선생님들을 놀려먹는 재미가 몇십 년이 지나도 남는 추억이다. 수학여행 중 열린 장기 자랑 시간에는 재능있는 학생들의 노래, 춤, 연극 등 많은 장르의 연행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주임 선생님을 우스꽝스러운 등장인물로 만들어 흉내 내는 패러디극이었다. 그러한 패러디 코믹 연극의 타깃은 거의 항상 체육과목을 담당했던 학생주임 선생님이나 괴짜 수학 선생님
“라디오에서 일왕의 육성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우리는 숨죽이고 들으며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했다. 그때 거리에 나온 일본인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선친이 경험하신 1945년 8월15일 정오의 모습이다. 이후 일본의 공식 항복선언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전쟁 중 미국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비해서 일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그들의 심성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그래서 미국 정부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인에 대한 인류학적 분석을 의뢰했고,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이 종전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유사 과학에 빗대어 언급한 ‘화물 숭배 (Cargo Cult)’. 화물 숭배는 비행기 모형을 만들어 놓고 비행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 모사해 동일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헛된 희망을 빗대어 표현하기 위한 은유로 흔히 활용돼 왔다.화물 숭배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기원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은 멜라네시아 일대의 섬들을 임시 주둔지로 활용했다. 그곳의 원주민들은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 달린 물체가 우렁찬 괴음을 내며 내려와 앉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유행해온 인터넷 밈 중에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는 게 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요?’라고 묻자, 질문을 받은 사람이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을 꺼내면서,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말하고는 춤을 추면서 저 멀리 가버리는 짧은 영상의 한 장면이다.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며 듣고 있는 노래 제목을 물어보는 유튜브 콘텐츠에서 유래된 것인데, 언젠가부터 무슨 질문을 해도 이어폰 때문에 질문을 들을 수 없었던 사람이 자신이 듣고 있던 노래 제목을 답하는 밈이 된 것이다.
‘문화 모퉁이’라는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퉁이’란 꺾여서 돌아가는 자리, 즉 어디론가 방향을 틀어볼 수 있는 곳이다. 인류학자인 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고 살펴봄으로써 감히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약간 틀어보고자, 잠시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미국에서는 작년 11월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초부터 생성형 AI가 대중 앞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후 지난 몇 개월 동안 생성형 AI를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 요정 지니처럼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술로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