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글자를 접한다.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접하는 조간신문, 출근 후 열어 보는 이메일, 업무 중에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 점심 후 들여다보는 잡지, 친구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 길거리의 표지판, 저녁 식사 자리의 메뉴판, 퇴근 후 받아 본 각종 우편물, 공과금 지로 용지, 영화의 자막, 그리고 각종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책. 이처럼 ‘읽기
느닷없는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그런데 보낸 이의 이름이 낯익다. 중3 아들놈이다. 전문가 인터뷰란다. 가만히 달력을 들여다보니 개학이 내일 모레다. ‘이 녀석 또 아빠 활용해서 방학 숙제 하나 때우려 하나보다.’ 그런데 ‘어라!’ 질문이 예사롭지가 않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이 어떤 면에서 유용한가?’ ‘디자인은 우리에게 숨겨진
‘본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본다’는 행위는 인간이 시각기관을 통해 기관 외부의 대상을 의미 있게 해석하여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물의 유사함과 차이를 구별하고, 불완전한 자극을 통해 완전한 형태를 추론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 숨겨진 자극의 원천을 확인하고, 또 지각한 자극을 기억하며 구체적인 형태로 재생해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
#1. 철학, 과학, 예술, 디자인, 실험 철학자 이정우 선생은 그의 저서 ‘접힘과 펼쳐짐’에서 철학의 역할은 과학이 당대까지 이루어 놓은 성과들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고 아직 과학적 탐구가 나아가지 못한 영역을 상상력을 통해 점선으로 그려 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철학과 단절된 과학은 기술과 자본의 하수인일 뿐이고, 과학과 단절된 철학은 황당한 사변이나 고급
#1. 1974년 이탈리아. 일찌감치 산업 부흥이 일었던 영국과 달리, 전후 가난을 면치 못했던 이탈리아. 이런 배경속에 태어난 엔조 마리(Enzo Mari)의 ‘디자인 자급자족(프로게타지오네, Autoprogettazione) 프로젝트’. 가난 속에 인문학과 예술을 스스로 공부했던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엔조 마리는 그 시대 통용되던 일반적 의미의 ‘디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디자인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닐까? “무언가 예쁘게 만드는 일” “무언가 멋지게 만드는 일” 일부 맞는 말이다. 우리 실생활에서 가장 피부로 가깝게 접하는 디자인이 대부분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
디자인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필자는 어느 도시를 가든 박물관, 유물, 건축, 거리 등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들은 한 도시와 국가를 이해하는 가장 큰 척도다. 그 도시의 역사, 문화, 경제, 예술로부터 그 도시가 품은 현대적 디자인의 원형을 찾기 위한 자연스러운 발걸음이다. 정확히 1년 전 울산대학교에 임용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
해마다 서울, 경기는 물론 지역 지자체를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축제가 경쟁적으로 열린다. 수박축제, 곶감축제, 막걸리축제, 한우축제 등 지역의 특산물을 활용한 축제가 있는가 하면, 해돋이축제, 벚꽃축제 등 지역의 자연경관을 이용한 축제도 있다. 지역 출신 주요인물을 내세우는 축제가 있는가 하면, 소리축제, 재즈축제, 영화축제 등 예술제가 기획되기도 한다.
나는 작년 3월에 울산으로 갓 부임해 온 신임 교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고 보스턴과 런던에서 머물던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사십 중반을 넘게 서울을 떠나 살아 본 적도 없으며, 울산은 방문 한 번 해본 적 없는, 낯선 도시였다. 그리고 이제 겨우 1년을 울산과 지낸 그야말로 울산 새내기다. 이렇다 보니 지금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울산 사람, 문화,